‘고향으로 돌아온…’ 전시회 여는 양구 박수근미술관
위대한 작가는 도시의 인상을 좌우한다. 프로축구 구단과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또 하나의 축은 가우디 건축물이다. 도시 규모는 바르셀로나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양구에서 화가 박수근(1914~1965)은 가우디 못지않은 예술인이다. 고향마을 입구의 로터리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상당수 아파트 외벽이 그의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양구읍 정림리 박수근미술관은 진품 하나 없이 이름뿐인 시골 미술관과는 다르다. 화백이 직접 그린 유화 작품 17점, 드로잉 작품 112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유화 4점, 드로잉 14점은 지난달 삼성에서 기증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소 50~60명이던 관람객이 300명 수준으로 늘었다.
그의 고향집에 세워진 박수근미술관은 외형부터 독특하다. 석축으로 둘러진 모습은 오래된 성을 연상시킨다. 달팽이처럼 곡선으로 휘어진 담장을 따라가면 뒤편의 입구로 연결된다. 화강암으로 둘러져 견고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건물 아래로는 대표작 ‘빨래터’를 재현한 개울이 관통한다. 충북 영동의 노근리기념관,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등을 설계한 이종호(1957~2014) 건축가의 작품이다. 세월이 흐르면 푸근한 질감으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한 박수근의 작품을 닮아갈 것 같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기념전시실을 먼저 만난다. 양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독학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한 인간 박수근에 초점을 맞췄다. 천재 화가의 가능성을 알아본 춘천 부잣집 딸 김복순 여사와의 인연, 아이들을 위해 직접 동화책을 그리고 썼던 부부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서울 창신동 시절 여러 작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인상적이다.
기획전시실에선 ‘이건희 컬렉션’을 기념해 ‘한가한 봄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 전시회가 10월 17일까지 열린다. 고 이건희 회장 가족이 기증한 작품은 ‘아기 업은 소녀’ ‘농악’ ‘한일(閑日)’ ‘마을풍경’이다. 한가한 봄날의 풍경을 그린 ‘한일’은 195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출품했던 작품이다. 해외로 반출됐다가 200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돼 한국으로 들어왔고, 이번에 그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업은 소녀’ 시리즈는 경매에 거의 출품되지 않아 희소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미술관 측은 밝혔다. 대부분이 뒷모습이나 측면인데, 이번에 기증받은 작품은 푸근하고 넉넉한 표정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작품 속 모델은 큰딸 박인숙(78)씨다. ‘얼짱 각도’로 살짝 몸을 돌린 끼 많은 소녀는 현재 화가 겸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미술관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작품은 ‘굴비’다. 2002년 미술관이 개관한 후 현대갤러리 박명자 회장으로부터 기증받은 첫 진품이다. 반도화랑 직원이었던 박 회장은 무명 박수근 화가에게 여러 모로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는 ‘꼭 좋은 그림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굴비’는 1966년 그를 대신해 부인 김복순 여사가 박 회장에게 결혼선물로 선사한 작품이다. 박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 2만5,000원에 그림을 팔았다가, 32년 후 10억 원 넘게 주고 다시 구입해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굴비’는 이를테면 박수근미술관이 꾸준히 진품 확보에 공을 들인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지난해에는 공원을 사이에 두고 박수근어린이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박수근이 동화 작품을 그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내부에는 고구려시대 위인전 그림이 다수 전시돼 있다. 아이들을 위해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고, 어머니는 이야기를 쓴 부부의 자식 사랑이 듬뿍 배어 있다. 박물관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박수근의 작품을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다양하게 보여준다. 미술관 뒤편 언덕에 위치한 부부의 묘까지는 산책로로 연결돼 있다. 공식 묘비석 옆에 나란히 놓인 투박한 돌덩이에 ‘서민화가 박수근 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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