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정시 출근하니 살맛 나네요. 상차하는데 힘이 솟아요. 고객님들께 물건을 더 빨리 갖다 드릴 수 있겠어요."
7일 경기 안산의 한 택배사 물류센터. 택배기사 김모(54)씨는 평소와 달리 7시에 출근해 배송할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9시 정각에 출근한 뒤, 이미 분류된 물품만 자신의 배송 트럭에 싣는 상차 작업부터 했다.
김씨는 "2시간 일찍 나와도 분류작업부터 하면 배송 출발이 늦어지고, 그러다 보면 보통 밤 10시에 달을 보며 퇴근하기 부지기수"라며 "오늘은 9시 출근해 2시간 상차 작업 뒤 11시부터 바로 배송을 시작했으니 해가 떠 있을 때 퇴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이렇게만 돼도 숨이 쉬어져요."
택배노조 "분류작업 시키지 마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이날 분류작업을 거부하고 9시 출근, 11시 배송 출발을 준수하는 단체행동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이는 '배송할 물품 분류는 택배사 업무'라고 정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즉 정부·한국통합물류협회·택배노조 3자 간 노사정 합의가 지난 1월 채택됐음에도 여전히 택배기사들이 물품을 분류하고 있는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노사정 합의안에 따르면 물품 분류엔 별도 인력을 쓰든지, 택배기사에게 시키려면 별도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택배사들이 합의안 시행에 1년간의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택배노조는 '시간 끌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현재 택배기사들의 근로시간은 주 72시간 이상인데, 매일 2시간 정도 이뤄지는 분류작업만 명확히 떼어내도 주 60시간대로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 60시간은 산업재해 승인 과로사 기준 시간이다.
택배대란은 없었지만...
택배기사의 물품 분류 거부 첫날 '택배 대란'은 없었다. 택배업은 특성상 월요일이 가장 물량이 적은 날이다. 거기다 월요일은 우체국 택배가 쉬는 날이었다. 택배기사는 모두 4만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택배노조에 가입한 택배기사들은 6,500여 명, 그중에서도 우체국 소속은 3,000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날 집단행동으로 인한 충격이 적은 이유다.
하지만 물량이 본격화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당장 8일에는 노사정 2차 합의안을 위한 회의가 열린다. 택배노조는 이를 명백히 의식하고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노사정 2차 합의안을 모으는 회의 내용에 따라 8일 오후에 향후 행동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측은 여전히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모든 택배사들이 곧바로 물품 분류 업무를 다른 곳에 넘길 수 없다는 걸 택배기사들도 알 텐데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그럼에도 노사정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일방적으로 분류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합의를 유리하게 이끌어내려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