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영화 '크루엘라' 상영관은 제법 많은 관객들로 채워졌다. 오랜 기간 사랑받은 디즈니의 실사 영화이자, '라라랜드'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엠마 스톤의 흑화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기대감이 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작품의 주인공 크루엘라 드 빌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나오는 악당이다. 반은 흑발, 반은 백발인 기괴한 헤어스타일에 모피를 즐겨입는 인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크루엘라'는 크루엘라 드 빌의 성장기를 그린 일종의 스핀오프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달랐던 에스텔라는 매일 싸움을 일삼는 트러블 메이커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만 그를 엄마는 따스하게 보듬어주고 두 사람은 런던으로 향한다. 에스텔라는 착한 딸이 될 것을 굳게 약속하지만 결국 엄마는 사고로 죽게 된다.
소매치기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에스텔라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남작 부인(엠마 톰슨) 눈에 띄게 되고,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된다. 하지만 악독한 남작 부인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내면에 잠자고 있던 크루엘라를 소환하기에 이른다. 부와 권력을 지닌 남작 부인에게 유일하게 대적 가능한, 런던 패션계 최고의 반항아 크루엘라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순종적인 에스텔라와 광기 어린 크루엘라로 자아가 분열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 크루엘라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이유 없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죄없는 타인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린 내면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고, 그의 복수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늘 착함을 강요받던 에스텔라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습과 틀에서 벗어나 크루엘라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안긴다. 최근 박진영은 새 오디션 프로그램 '라우드'에서 "조용한 사람들의 내면이 가장 소란스럽다"는 스티븐 호킹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나 야망을 숨기고 살아가지 않는가.
현실에 순응하고 억압 받던 에스텔라는 어쩌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인지 모른다. 매력적인 빌런 크루엘라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내면의 크루엘라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지만, 가슴 속에서만 요동칠 뿐이다. '문제아'로 낙인찍히거나 쓸데없는 주목을 받을 우려가 있어 쉽게 꺼내 보이기 어려운 게 현실. 물론 영화에선 보다 극적인 상황들이 가미됐지만 크루엘라의 모습이 묘한 해방감을 주는 건 공감을 이끄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극과 극의 두 자아를 연기한 엠마 스톤은 슬픔과 아련함, 복수심과 광기를 큰 눈을 통해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남작 부인 역의 엠마 톰슨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을 연기하며 에스텔라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두 사람의 불꽃 튀는 카리스마 대결이 이 작품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1970년대 런던 패션계를 화려하게 구현한 점, 대비되는 패션 역시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크루엘라'는 현재 속편의 초기 개발 단계에 있다. 속편에서는 악당으로 더 크게 성장(?)한 크루엘라의 모습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에 가여우면서도 파격적이고 개성 넘치는 현 시점의 '크루엘라'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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