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 관대한 일본? 심리적 장벽 낮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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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 관대한 일본? 심리적 장벽 낮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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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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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LGBT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6월은 성 소수자 인권의 달이다. 도덕적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 비해 일본 사회는 사적인 영역에서는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또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크게 유연해지고 있다. 사진은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퀴어 퍼레이드(필자 촬영).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 사회에서는 LGBT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는 중

일본에서 소위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딴 표현으로 성 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칭하는 단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성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많이 유연해졌고, 특히 그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 의식에 공감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부터 일본의 TV프로그램에는 게이나 남성 트랜스젠더가 자주 등장했다. 개중에는 상당한 인기를 끌어 크게 연예인으로서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접하고 “일본 사회는 원래 LGBT 문제에 관대하다”는 인상을 갖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특정 TV프로그램에 ‘괴짜에 유난스러운 성격인 게이 남성’의 캐릭터가 허용되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웃음거리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오히려 강화한다는 비판이 일 정도였다. 그랬던 분위기가 최근에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변호사나 헤어 디자이너 등 성실한 직업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게이 커플의 일상을 아기자기하게 각색한 TV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중년이 되어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한 대기업 부장의 스토리를 그린 심야 드라마가 공영 전파를 타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매스 미디어가 성 소수자의 다양성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실감케 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동성 간 파트너십 제도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적 소수자들의 커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로 2015년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지자체에서 처음 도입했다. 지금은 도쿄도 23개구 중 시부야구 등 8개구, 오사카부, 군마현, 이바라키현 등 주변 지자체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고이케 도쿄도지사도 도쿄도 차원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약속했다. 동성 간의 혼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는 아니지만, 공공 기관이 배우자 증명에 준하는 서류를 공식 발행하는 만큼 LGBT 문제에 있어서 전향적인 의미가 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대만에서만 동성 간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성 소수자의 인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시민사회도 반색하는 분위기다.

◇LGBT 문제에 비교적 유연한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

도덕적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 비해, 일본 사회는 적어도 사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 성 정체성은 개인이 누구에 대해 성적 호감을 느끼는가에 관련한 문제다. 동성애에 공감하느냐는 문제와는 별개로, 지극히 사적인 사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공적인 판단을 개입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권 침해라는 생각에 공감하는 일본인이 많다. 일본에서도 성 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혹은 직장 등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정신적 부담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BT와 관련한 사안이 곧잘 동성애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번지는 한국 사회보다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장벽이 조금은 낮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흔치는 않지만 게이나 레즈비언이라는 스스로의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 의식을 발전시켜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일본인 연구자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트랜스젠더라는 자기의 성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고 대학에서 ‘젠더론’을 강의하는 동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 강의의 첫 수업이 끝난 뒤 한 남학생이 다가와 작은 쪽지를 내게 건네었다.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설명과 함께 ‘앞으로는 바뀐 남자 이름으로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 쓰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출석을 부를 때 대답이 없어 결석으로 처리된 여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성별을 바꾸기 전 그의 본명이 출석부에 등록되어 있던 모양이다. 그의 바람대로 출석부의 이름을 수정했고, 이후 그 학생은 남성으로서 수업에 참가했다. 생기발랄하고 명석한 질문으로 토론 수업에 늘 활기를 불어넣어 준 그 학생에게 지금도 고마운 기억이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가 일본 사회 전체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연구자 커뮤니티나 대학 등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시하는 분야에서는 LGBT 문제에 대한 편견이 많이 옅어졌다. 이에 힘입어 성 소수자가 조금씩이나마 스스로를 드러내고 건강하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LGBT 문제에 전향적인 시민사회와는 딴판으로, 일본 정계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소위 ‘이해 증진 법안’이 보수파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2016년 이 법안에 대한 검토가 시작된 배경부터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성 소수자의 인권 의식이 높아졌다기보다는 올림픽 개최국이라는 대외적 명분을 중시한 입법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헌장에는 ‘성적 지향을 포함, 어떤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이에 부합하는 법을 선포해 모범을 보이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경위야 어떻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폭언이 불거지는 등 형편없는 인권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포괄적으로 명시한 법안의 목적에 대해 보수 강경파가 반대하고 나섰다. “과도한 차별금지 운동으로 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서 의도치 않은 가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등 사실상 사회적 차별을 옹호하는 발언이 정치인의 입에서 공공연하게 나왔다. 서로 다른 견해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법안은 결국 총회 안건으로 제출되지조차 못했다. 차별에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국가가 나서서 차별을 조장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LGBT 문제에 대한 시선이 유연해지고 있다고 해서, 일본 사회의 보편적 인권 의식이 높아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이니치에 대한 편견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배타적 인식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차별적 관행도 뿌리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일본에서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공론화되었던 상황은 고무적인 측면이 있다. 비록 법안은 무산되었지만, LGBT사안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관한 정치적 판단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 등에 따라 성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판단과 평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LGBT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개인적 선택을 빌미로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해도 좋은가라는 점이야말로 이 사안의 본질이다. 이 사안에 관한 한 한국 사회도 과제가 적지 않다. 불과 몇 달 전, 퀴어 문화 운동을 이끌던 활동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군에서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한 트랜스젠더 운동가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사회적 차별이 어떤 이에게는 목숨을 끊을 정도의 고통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사적인 선택에 대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의 ‘지극한 개인주의’에 참고할 점이 있지 않겠는가?

김경화 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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