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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직접 정부 광고비 정하는 미디어 바우처... 언론 생태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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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직접 정부 광고비 정하는 미디어 바우처... 언론 생태계 바꿀 수 있을까

입력
2021.06.07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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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원(맨 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같은 당 유정주(왼쪽부터), 장경태 의원과 미디어 바우처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디어 바우처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정 액수의 바우처를 지급하고, 국민들은 지급받은 바우처로 신뢰하는 언론사나 기사를 선택적으로 후원하는 제도다. 뉴스1

김승원(맨 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같은 당 유정주(왼쪽부터), 장경태 의원과 미디어 바우처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디어 바우처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정 액수의 바우처를 지급하고, 국민들은 지급받은 바우처로 신뢰하는 언론사나 기사를 선택적으로 후원하는 제도다. 뉴스1

국민이 직접 언론을 후원하는 '미디어 바우처' 제도가 언론 생태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낼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이 제도에 대한 논의가 국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급기야 미디어 바우처법('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 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까지 지난달 28일 발의됐다. 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이루고 추락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우려가 언론계 안팎에서 엇갈리고 있다.

ABC 부수 조작 사태가 촉발한 '미디어 바우처'

미디어 바우처는 정부가 국민에게 일정 금액이 담긴 바우처(쿠폰)를 주면, 이를 국민이 언론사에 직접 후원하는 제도다. 2009년 미국에서 처음 제안됐으나 실제로 시행한 나라는 아직 없다. 국내에서 미디어 바우처가 갑자기 떠오른 배경에는 지난 3월 확인된 한국ABC협회의 부수 조작 사태가 있다. 신문에 정부 광고를 실을 때 매체 선정 기준으로 삼아온 부수가 부풀려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디어 바우처가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정부·공공기관이 언론에 광고 비용으로 지출하는 매년 1조 원 예산을 국민에게 돌려드리자"라고 제안했다. "예컨대 정부가 매년 2만~3만 원의 바우처를 국민인 독자에게 제공하고, 국민이 좋은 정보를 제공한 언론사나 기사에 후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부수 뻥튀기로 인해 왜곡된 언론 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신뢰를 잃은 ABC 부수 공사 대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언론 영향력 평가 제도를 도입하자는 취지다.

"취지는 좋지만 '정부 광고' 재원으론 한계"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법안에서 미디어 바우처는 현금성 쿠폰이 아닌 일종의 '투표권' 개념으로 담겼다. 국민이 미디어 바우처를 통해 언론사와 기사를 평가하고, 정부가 그 결과를 집계해 언론사에 대한 광고 집행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다. 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적 재원을 투입하고, 그 분배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한다는 미디어 바우처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미디어 바우처가 기존 정부 광고 집행 기준 안에 갇히면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다.

이 법이 통과되면 신문, 인터넷신문, 뉴스통신, 정기간행물 등 인쇄매체에 대한 정부 광고비 약 2,500억 원의 집행을 국민이 정하게 된다. 지난해 정부 광고 규모는 1조893억 원으로, 이중 방송을 제외한 인쇄매체 광고는 2,452억 원이다. 지난해 국내에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처음 소개한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국민이 직접 신뢰하고, 응원하는 언론사에 후원하는 것이 곧바로 재정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방식은 국민 참여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출하는 광고비 배분에 국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론 후원에 따른 적절한 재정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광고 영업을 하지 않는 미디어 스타트업이나 독립언론의 경우 애초 대상이 아닌 만큼 국민 후원 의사가 있더라도 실제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게 된다.

진짜 언론 생태계 바꾸려면

비선호의 뜻으로 '마이너스 바우처'를 보낼 수 있게 한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좋은 저널리즘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으로 언론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미디어 바우처의 원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1만 원의 미디어 바우처를 받더라도 1만 원의 마이너스 바우처를 받게 되면 결국 0원이 된다. 김서중 민언련 상임대표(성공회대 교수)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현실의 정치·언론 지형 탓에 내 생각에 맞는 언론사에 바우처를 몰아주면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이 심화되는 악순환의 우려가 있다"며 "좋은 제도인 건 맞지만 역효과를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대로는 언론 생태계를 바꾸는 데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제도가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선결 과제로 충분한 재원 확보가 꼽힌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미디어 바우처는 미디어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정책대안으로 일종의 기본공급"이라며 "다만 적정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추후 국고 출연이나 언론진흥기금 투입, 포털 사업자 등으로부터의 징수 등 별도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사기업인 언론사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할 수 없으니 일단 기존 정부 광고비를 활용, 범위를 좁혀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미디어 바우처를 실행한 후 넓혀 가겠다는 계획"이라며 "달라진 언론 생태계를 반영할 수 있는 언론진흥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 특별위원회'는 미디어 바우처법과 함께 포털의 기사 제휴 공정성 확보 방안도 연계해 논의할 방침이다. 오는 9월 법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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