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손배소 각하 결정 두고 논란 심화
"하급심도 충분히 이견 낼 수 있다" 중론 속
"대법 판결 재차 나올 때까지 제각각 결론" 전망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1심 재판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정반대 결론을 내놓으면서 법원 안팎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법 판례와 다른 의견을 내는 일이 이례적이진 않지만, 불과 3년 만에 나온 '반기'라 일각에선 대법원 위상이 흔들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지난 7일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 16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 취지는 피해자들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이라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협정으로 피해자들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는 2018년 대법 전원합의체 판단과 정면 배치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 내부에선 이번 판결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 법관들은 3년 전 대법원 판례에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하급심에서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등법원 소속의 한 부장판사는 "2018년 대법원 판결 논리가 사건 중요도에 비해 허술한 면이 없지 않았다"며 "논리적 공백에 대해 하급심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도 "대법원 판례라도 이견을 내는 것은 금기시돼선 안 되고 실제 완전히 이례적인 일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가 대법 판결에 구속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해당 제도 폐지를 주장해 온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부터 사실상 고법 부장판사 승진 인사를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기 위해 윗선을 의식하지 않는 환경이 마련됐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승진 제도가 없어지면서 1심 재판부에도 연차가 높은 판사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소신 판결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위상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감지된다. 이번 판결을 순전히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만 보기엔 최근 들어 대법원 판단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내는 판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에는 장창국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의 대법원 형사법연구회 자유토론장 게시판에서 "성폭력 사건 담당 1·2심은 아우성이다. '무죄 판결해 봐야 대법원에서 파기된다'는 자조가 난무하다"며 대법원을 공개 비판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전원합의체 판단 3년 만에 사건을 다시 논의하자고 한 건 대법원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대법원 권위가 흔들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급심에 강제징용 관련 재판이 수십 건 진행되고 있어,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를 경우 소송 당사자들은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서울중앙지법에만 현재 20건 넘게 계류돼 있다. 전직 대법관 출신의 원로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다시 한번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하급심에서 제각각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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