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빛은 통찰, 계몽, 발전의 상징이었다. 어둠은 두려움, 무지(無知), 범죄의 표상이었다. 자고로 빛나는 건 드러내야 마땅했고, 어둠은 감추려 애썼다. 그 덕에 세상은 갈수록 밝아졌다. 문제는 밝음이 너무 과해 어둠을 통째로 삼켜버렸다는 데 있다. 새벽 별빛을 가르는 택배 노동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한숨 소리에 도시는 잠들지 못한 지 오래다. 24시간 내내 깨어 있는 세상의 시간 속에 밤은 사라졌다. 빛과 어둠, 낮과 밤의 균형이 깨진 세상이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는 세계를 서서히, 그렇지만 철저히 망가뜨리고 있는 ‘빛 공해’(인공적인 빛에 의해 밤이 밝아지는 현상)가 보내는 준엄한 경고장이다. 빛 공해의 심각성을 알리는 ‘밤의 상실 네트워크’ 단체를 이끌고 있는 독일의 생물학자 아네테 크롭베네슈가 썼다. 2013년 전 세계 처음으로 야간 인공조명의 해악을 고발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유럽에선 ‘빛 공해’ 알리기 전도사로 유명하다.
‘빛 공해’는 지금껏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광고판, 전조등, 가로등, 주택 조명에서 나오는 빛의 홍수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사람들은 오히려 어두운 게 문제 아니냐고 되묻는다. 심지어 환경보호단체들조차 ‘빛 공해’는 한가한 이슈로 취급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빛 공해에 둔감한 이유를 빛에 빚진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 분석한다. 인간이 불을 발명한 이래로 석유등, 가스등, 전기등, LED까지 빛은 안전을 지키고 발전을 이끄는 데 일등공신이었기에. 하지만 책은 절대선(善)이라 믿었던 그 빛이 인간의 세계를 얼마나 파멸로 내모는지 폭로한다. 말 그대로 ‘빛의 배신’이다.
먼저 빛은 인간을 아프게 한다. 생체시계를 헝클어 놓은 탓이다. 휴대폰 조명, 텔레비전 등 인공조명은 인간이 잠들면 생성되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막아 선다. 단순히 수면 장애로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밤 사이 쉬지 못한 몸은 다음날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는 우울증, 비만, 심혈관계 질환, 암까지 유발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연구진의 실험 결과, 가장 밝은 지역인 서울과 가장 어두운 지역인 강원도의 유방암 위험률 차이가 34%였다. 빛은 병을 만든다.
빛은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기도 하다. 기류의 소용돌이가 적은 밤에 주로 움직이는 철새들은 이동의 신호를 낮의 길이에서 찾는데 인공조명은 새들의 나침반을 무력화시킨다. 밤새 불을 밝힌 고층빌딩 창문과 주유소 바닥으로 철새들은 추락한다. 새끼 바다거북도 빛의 희생양이다. 갓 부화한 새끼 거북은 천적들의 눈에 띄기 전에 빨리 바다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하지만, 해변의 환한 조명 덕에 탈진할 때까지 모래 벌판을 헤맨다. 이렇게 매년 10만 마리의 새끼 바다거북이 죽음을 맞는다.
과도한 빛에 노출되는 식물의 경우 휴식시간 없이 몰아치는 광합성에 번 아웃에 빠진다. 그 식물의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의 생체리듬도 망가진다. 빛 공해가 먹이사슬을 타고 생태계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게 생태학자들의 우려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빛의 가치를 옹호한다. 어두운 밤길, 범죄를 예방하고 교통사고를 줄여주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이 역시 편견이다. 2015년 독일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의 61%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발생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오히려 불 밝힌 실외조명은 먼 곳에서도 관찰이 용이해 범죄자들의 타깃이 되기 쉽다. 보안전문가들은 인공조명 대신 튼튼한 문을 설치하라고 충고한다.
너무 밝은 빛은 과도한 명암 대비, 눈부심 문제 등으로 도로의 안전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저자는 빛 공해 방지 법안 등 구속력 있는 조치로 야간 조명을 최소한의 필요에 맞춰 줄여 나가고, '생태적 책임감'을 갖춘 조명을 설치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책을 읽다 보면 심심치 않게 한국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세계 주요 20개국의 빛 공해 노출 면적을 측정한 결과 한국은 89.4%로, 2위(2016년)를 차지했을 정도로 ‘빛 공해국’이다. 인구의 66%가 너무 밝은 환경에 살고 있어서 완전한 암순응(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차차 어둠에 눈이 익어 물건들이 보이는 현상)에 들어가는 일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빛 공해 문제는 어쩌면 환경 이슈에서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전등 스위치만 딸깍 내리면 되니까. 그 작은 실천으로 빛의 욕망을 위해 폐기됐던 밤을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 마침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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