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심한 여드름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비포장도로’라고 불리던 노숙자 로널드 존스는 1985년 3월 미국 시카고의 밤거리에서 처음 만난 20대 여성을 호텔에서 강간하고 살해했다. 경찰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존스는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기 어려운 사실들을 털어놨다. 경찰의 질문에 “제가 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경찰은 피해자의 질에서 정액을 검출했는데 존스는 ‘성관계’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창문’을 통해서 범행 현장에 드나들었으며 흉기로 피해자를 베었다는 진술도 범인의 행적과 들어맞았다. 존스는 뒤늦게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배심원단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존스는 살아남았다. 최후의 순간, 존스가 요청한 DNA 검사가 무죄를 입증했다. 1997년 검사가 시행됐고 피해자에게서 검출된 정액의 주인은 존스가 아니었다. DNA 정보는 제3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때부터 수사와 재판이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먼저 경찰은 범죄 현장으로 존스를 데려가 범인의 행동을 차근차근 알려줬다. 자백을 주입한 것이다.
과학수사도 엉망이었다. 검찰은 ABO 혈액형 검사 결과를 증거로 제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피해자에게서 인구의 32%가 보유한 A형 물질이 검출됐다. 존스는 체액에서 혈액형이 검출되지 않는 비분비자였다. 비분비자가 인구의 20%를 차지하니 결과적으로 인구의 절반 정도가 정액의 주인일 수 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피해자가 A형이라는 사실은 감춰졌다. 검사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지만 증거로 쓰였다.

로널드 존스. 한겨레출판 제공
형사사법절차는 불완전하다
존스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형사사법절차는 불완전하고 때로는 구조적 문제로 오작동한다. 듀크대에서 형사사법절차의 오류를 연구해온 브랜던 L 개릿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DNA 검사가 보급된 이후로 250명 이상의 피고인이 판결 이후에 결백을 입증했다. 개릿은 이들의 재판기록에서 공통점을 찾아내 형사사법절차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점들을 파헤쳤다.
자백 강요당하기 쉬워
먼저 자백은 쉽게 오염된다. 경찰이 범인이란 확신에 찬 나머지 용의자에게 자백을 주입하고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판 피해자 250명 가운데 40명(16%)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자백했다. 38명은 범인만 알 수 있는 사실을 털어놨다. 경찰이 직간접적으로 수사 과정을 노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거짓으로 자백한 피고인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이거나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뉴욕주에서 동급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던 제프리 데스코빅은 몇 주에 걸쳐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이 녹음한 신문시간은 고작 35분에 불과했다. 자신들이 신사적으로 행동할 때만 녹음기를 켜뒀기 때문이다. 데스코빅은 DNA 검사를 통해서 진범이 잡히기 전까지 16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오염된 재판. 브랜던 L. 개릿 지음ㆍ신민영 옮김ㆍ한겨레출판 발행ㆍ512쪽ㆍ2만8,000원
목격자 증언도 때때로 왜곡
목격자의 증언도 왜곡되기 쉽다. 경찰은 목격자에게 자신들이 찾은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하라고 암시하기도 한다. 먼저 여러 사진을 늘어놓고 목격자에게 범인을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목격자의 시선이 특정 인물에게 머물 때 “잘하고 있다”면서 신호를 주는 식이다. 목격자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러한 절차가 반복될수록 선택을 확신한다.
과학수사에도 오류는 있다
과학수사마저 구조적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다. DNA 검사의 대중화 이전까지 과학 증거 분석관들이 사용한 ‘과학기술’은 신뢰성이 형편없었다. 이를 테면 재판정에서 배심원들에게 “여러 개의 음모를 발견했고 피고와 미시적으로 일관성이 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체모의 특성을 인구의 몇%가 공유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과학아카데미는 2009년 보고서에서 DNA 검사를 제외한 그 어떤 법과학 분야도 “일관성, 높은 수준의 확실성, 특정 개인 혹은 출처와 증거 사이의 연관성을 엄격하게 보여주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믿을 만한 기법은 DNA 검사뿐이었다는 이야기다. 분석관 대다수가 경찰이나 산하 범죄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구조도 객관적 증거 분석이 어려운 이유다.
그럼 모든 수사 결과와 재판창결과를 의심해야 하나. 개릿은 거기서 고개를 젓는다. 수사기관과 판사를 악마로 몰아붙인다고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회가 나서서 형사사법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몇몇의 불운이고 지루한 이야기라며 눈감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경찰이 모든 신문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러셀 파인골드 미국 상원의원은 로널드 존스의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렇게 평가했다.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족적 비교 기법은 신빙성이 떨어질 때가 많다고 개릿은 주장한다. 피고인의 신발이 사건 현장의 족적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쓸 만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반면, 피고인의 신발과 사건 현장의 족적이 비슷해 보이는 경우에는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신발은 대량 생산되므로 비슷한 족적을 남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발 밑창에 걸음걸이가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없지만 250건의 오판 피해자의 경우에서는 수사기관 요원이 신발 마모 패턴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견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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