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의 살인은 용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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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의 살인은 용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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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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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넷플릭스 '주피터스 레거시'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주피터스 레거시'는 인류를 지켜온 1세대 슈퍼히어로와 그들의 뒤를 이을 젊은 슈퍼히어로, 이들이 악에 맞서 새로운 싸움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슈퍼히어로의 살인은 용납될 수 있을까? 대중문화의 주류가 된 마블과 DC의 영화에서 빌런을 죽이는 슈퍼히어로는 많이 있다. 지구의 운명을 둘러싼 전쟁이라면 악당을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일상적인 상황이라면 어떨까? 경찰이라 해도 살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자수하거나 이미 제압된 상황이라면 즉결처분할 수 없다. 경찰이나 군인이 아닌 슈퍼히어로라면 더욱 살인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정당방위를 입증할 수 없다면 슈퍼히어로의 살인은 범죄가 될 수 있다.

원작 DC 코믹스의 배트맨은 살인을 하지 않는 슈퍼히어로다. 백만장자인 브루스 웨인은 범죄자에게 부모를 잃은 후, 가면을 쓰고 배트맨이 됐다. 그러나 배트맨은 증오와 복수심에 사로잡혀 범죄자를 사적으로 처단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조커가 온갖 야비한 방법과 수단으로 배트맨을 자극하여 살인을 저지르게 유도해도 끝내 넘어가지 않는다. 철저하게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마블의 퍼니셔 같은 캐릭터와 다른 지점이다. 살인은 사적인 복수와 사회의 질서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최초의 슈퍼히어로이자 부부인 유토피언(왼쪽)과 레이디 리버티는 살인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더 유니언 오브 저스티스'를 결성해 세계 평화를 지켜왔다. 넷플릭스 제공

슈퍼히어로의 존재가 일상이 된 시대를 보여주는 '주피터스 레거시'의 고민도 비슷하다. 유토피언, 레이디 리버티, 브레인웨이브 등 최초의 슈퍼히어로들이 만든 '더 유니언 오브 저스티스(유니언)'는 사악한 빌런들과 싸우며 세계의 평화를 지켜왔다.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라면 유니언에 가입하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빌런들은 점점 강해지며 슈퍼히어로의 생명을 위협하고, 사회는 사분오열되며 대체 무엇이 정의인지 혼란이 심해진다.

'주피터스 레거시' 1화가 시작되면 빌런인 스타맥스가 탈옥을 한다. 그를 잡기 위해 유니언의 멤버들이 모두 출동한다. 젊은 슈퍼히어로 몇 명이 죽고, 유토피언과 레이디 리버티마저 위험한 상황에 몰린다. 친구들의 죽음을 본 파라곤은 아버지 유토피언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스타맥스를 죽여버린다. 유토피언은 살인을 저지른 파라곤을 꾸짖지만 상황이 복잡해진다. 강력한 범죄가 점점 증가하는 위험한 시대이기에 파라곤의 행동-살인을 지지하는 사람이 80%에 달한다. 젊은 슈퍼히어로들이 빌런과 싸우다 죽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유니언을 탈퇴하려는 이들도 생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스타맥스는 탈옥한 적이 없었고, 파라곤이 죽인 스타맥스는 누군가 만들어낸 복제인간이었다. 유토피언의 죽마고우로 유니언의 창설 멤버였지만 범죄자의 길을 택한 스카이폭스의 짓이라고 의심한다.


'주피터스 레거시'는 넷플릭스와 코믹북 출판사 밀러월드의 첫 번째 합작품이다. 마크 밀러와 프랭크 콰이틀리의 동명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원작 그래픽노블 표지

'주피터스 레거시'의 원작은 마크 밀러와 프랭크 콰이틀리의 코믹스다. 2015년부터 넷플릭스는 마블의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아이언 피스트', '루크 케이지' 그리고 '디펜더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블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시작하면서 넷플릭스와 관계를 끊었다. DC도 앞으로는 HBO맥스를 통해 슈퍼히어로 영화와 시리즈를 공개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넷플릭스가 포기할 리 없다. 넷플릭스는 영화로도 성공을 거둔 '킥애스'와 '원티드'의 원작을 소유한 마크 밀러의 회사 '밀러월드'와 손을 잡았다. '주피터스 레거시'는 넷플릭스와 밀러월드가 함께 만든 첫 작품이다.

마블과 DC에서 영화 '로건'의 시발점이 된 '울버린: 올드맨 로건'과 슈퍼맨이 미국의 스몰빌이 아니라 소련에 떨어져 '인민의 영웅'이 된 상황을 그린 '슈퍼맨: 레드 선' 등 도발적이며 독창적인 슈퍼히어로 코믹스를 창조했던 마크 밀러의 세계는 광활하고 야심차다. 영화 '킥애스'는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소년의 분투를 통해 리얼하면서도 짜릿한 판타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원작에 비하면 너무나 따뜻하고, 몽상에 가까운 이야기다. 원작은 슈퍼히어로 판타지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보여준다. 결국 소년은 모든 것에서 실패하고 찌질한 루저의 일상으로 초라하게 돌아온다. '원티드'의 코믹스는 더욱 통렬하다. '원티드'의 세계는 슈퍼히어로가 사라지고 초악당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이다. 슈퍼히어로라는 존재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 그런 세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 근본부터 뒤집어버린다.


'주피터스 레거시' 속 1세대 슈퍼히어로에게 살인을 하지 않는 것은 절대적인 규칙이다. 이를 두고 아랫세대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넷플릭스 제공

'주피터스 레거시'는 정통 스타일이다. 유토피언은 슈퍼맨을 닮았다. 엄청난 파워와 내구력을 지녔고, 눈에서는 광선을 발사한다. 이름부터 그야말로 인류의 이상향이다. 하지만 고리타분하다. 그나마 아들은 싸우면서도 아버지의 길을 따르겠다고 생각하지만, 딸인 클로이는 집을 나가 패션모델이 되고 망나니 생활을 유지한다. 유토피언은 순수하고 순진하지만, 오직 자신의 길만이 옳다고 강요하는 기성세대의 악습을 고수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슈퍼히어로들도 있다. 이 세계가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고 믿는 보수적인 이들은 질서와 도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시도한다. 야비한 폭력은 완벽하게 사악한 악당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기주의자들로부터 시작한다.

유토피언이 세운 유니언의 원칙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대중을 돕는 것이다. 살인을 하지 않는 것은, 공권력이 되지 않아야 할 슈퍼히어로의 절대적인 규칙이다. 유토피언이 코드를 만든 이유는 유니언의 기원과 맞닿아 있다. 셸던, 그레이스, 월터, 조지 등 최초의 슈퍼히어로가 탄생한 것은 대공황의 시대였다. 셸던과 월터는 아버지와 함께 샘슨 철강을 운영하고 있다. 대공황이 일어나자 샘슨 철강은 도산 위기에 몰린다. 부정을 저질렀던 아버지는 셸던의 눈앞에서 자살한다. 그날부터 셸던은 환각과 환청에 시달린다. 동료를 찾고, 주어진 임무를 찾아 모험을 떠나야만 한다. 아버지의 부정을 폭로했던 기자 그레이스, 대공황과 함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조지 등 6명의 남녀는 대서양의 섬으로 떠난다.


슈퍼히어로의 세대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이들은 악의 존재와 어떻게, 어떤 수단으로 싸워야 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넷플릭스 제공

'주피터스 레거시'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한 유니언의 싸움을 보여주는 현대와 셸던 그리고 최초의 슈퍼히어로들이 능력을 얻게 되는 대공황시대를 교차한다. 유니언은 대공황이라는 절망의 시대를 이겨내고 미래를 꿈꾸게 한 대중의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다. 지금 유니언에게 주어진 고민은 악의 존재와 어떻게, 어떤 수단으로 싸워야 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과거의 영웅들은 분노와 의심을 다스리며 서로를 믿고 협력해야만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힘은 개인에게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고난을 겪은 영웅에게 초월적 존재가 맡긴 위대한 선물이며 동시에 의무다.

시즌 1에서 유토피언은 변하지 않는다. 유토피언의 약점을 알고 있는 악당들은 음모를 꾸미면서 주변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결국 시대가 변하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기본적인 원칙은 동일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의 방식이나 태도 등이 바뀌어야만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진짜 악당이 누군지 밝혀지면, 시즌 2에서 파라곤을 비롯한 젊은 슈퍼히어로들이 어떻게 새로운 코드를 세워가며 싸울 것인지 궁금해진다. 즉 '주피터스 레거시'는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새로운 싸움,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과거의 유산은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주하고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니까.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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