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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뺏기고 하남에 내주고...'넓은 고을' 광주는 '작은 땅'이 됐다

입력
2021.06.05 11: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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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김시덕문헌학자

편집자주

도시는 생명이다. 형성되고 성장하고 쇠락하고 다시 탄생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그 도시 안에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가 도시의 의미를 새롭게 던져준다.


<12>하남시 구도심에서 찾은 옛 광주군의 흔적

오늘은 옛 경기도 광주군의 일부였다가 떨어져나온 하남시의 구도심을 잇는 역말로를 걷는다.



예전에 하남시가 속했던 광주군은 땅이 넓다고 해서 광주(廣州)였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에 넘어간 지역은 지금의 '강남'이 되었고, 서울 강북 청계천 지역의 철거민이 집단 이주한 '광주대단지'는 성남시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땅의 북부 지역이 1989년에 하남시로 독립하면서 광주군(광주시)은 더 이상 서울시와 경계를 접하지 않는 행정단위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예전에는 북쪽 경계 대부분이 한강을 접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남양주군 조안면의 정약용 유적지를 바라보는 일부 지역에서만 한강을 접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광주군(광주시)은 서울시와 한강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동남쪽으로 축소된 느낌이다.

광주 아닌 하남에 있는 광주향교

광주향교

광주향교

특히 오늘날 하남시가 된 옛 광주군 동부읍은 '일터와 학교를 거의 모두 서울에 두고 있는 형편'(252쪽)이라는 언급처럼, '한국의 발견 경기도'가 출간되던 1980년대에 이미 대서울화를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장차 동부읍이 새로운 시로 떨어져 나간다는 소문이 있는데, 만약 이 소문이 실현된다면 광주군은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전망을 싣고 있다. 그리고 이 예측은 1989년에 실현되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옛 광주군의 중심이라 할 광주향교가 하남시에 포함된 사실이다. 광주향교 없는 광주군(광주시)은, 어떤 의미에서 시흥행궁 없는 시흥시와 비슷하게 정체성의 고민을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하겠다.

예전에는 모두 광주군에 속했던 오늘날의 하남시와 서울 강동구 사이에는 개발제한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서울시에서는 이 지역에 장애인·노인 복지시설을 설치했고, 전우용사촌, 국가유공자용사촌 십자성마을회 등의 용사촌도 서울시의 동남쪽 경계인 강동구에 들어섰다. 한편, 1967년에 흥인동?서부이촌동 철거민이, 1968년에는 숭인동·창신동 이재민이 강동구 강일동으로 이주했고, 하남시와 마주한 강동구 길동 지역은 농촌지역과 다름없는 빈촌이었다가 1972년부터 개발되어 주거지와 개발제한구역이 혼재된 경관을 보이게 되었다(강동문화포털). 이들 시설과 마주한 오늘날의 하남시도, 당시에는 가나안농군학교로 상징되는 농업 시설과 덕풍리 일대의 공업 시설이 혼재된 모습을 보였다.

서울의 편의를 위해 희생된 광주

가나안농군학교의 개척의 종

가나안농군학교의 개척의 종

새마을운동에 영감을 주었다고도 일컬어지는 하남시 미사 지역의 가나안농군학교는, 미사지구가 신도시로 개발되는 바람에 이곳을 떠나야 했다. 서울의 중산층 시민들이 살 고층아파트를 옛 광주군 땅에서 제공하기 위해 밀려난 것이다. 현재, 옛 가나안농군학교의 건물 가운데 두 채가 미사역사공원으로 옮겨져 복원되어 있지만, 이곳에서 더 이상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옛 광주군 영역이 서울시의 편의를 위해 희생되는 모습을 '한국의 발견 경기도' 광주군 편에서는 이렇게 고발하고 있다. "강동구와 강남구의 땅을 가져가고도 모자라서 동부읍과 서부면의 논밭을 집터나 공장터로" 쓴다고. 광주군에서 땅을 떼어서 서울시 동남부에 붙였고, 서울시를 확장하는 정책을 중단한 뒤에도 일종의 신도시 개념으로 하남시를 떼어냈고, 이번에는 또 3기 신도시를 개발한다고 하남시 덕풍동 구도심의 남쪽 지역을 하남교산지구로 묶었다.


춘궁동

춘궁동


2021년 초에 LH 직원과 현지 공무원들의 개발예정지 투기 의혹이 문제가 되었을 때 이곳 하남교산지구를 찾아 갔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광주군의 중심이었던 곳으로서 지금도 옛 광주군 시절의 광주향교가 있다. 그래서 향교의 '교'자가 들어간 '교산동'이라는 지명이 있고, 광주군의 옛 고을터라는 뜻으로 보이는 '고골'이라는 지명도 남아 있으며, 관아가 있었기 때문에 '궁'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궁말', '춘궁동'이라는 지명이 있다.

개발 둘러싼 갈등은 진행 중

서울 지하철 5호선 연장선에 역을 추가로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플래카드(왼쪽)와 지주조합 설립을 허가받았음을 알리는 플래카드.

서울 지하철 5호선 연장선에 역을 추가로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플래카드(왼쪽)와 지주조합 설립을 허가받았음을 알리는 플래카드.


LH의 3기 신도시 개발에 반대하는 플래카드 뒤편으로 고압송전탑과 고층아파트단지들이 시층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는, 하남교산지구가 하남시에서도 경계에 해당하는 갈등도시의 현장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잘 모셔둔 불상들과 토지 보상금액을 높게 받도록 해주겠다는 플래카드가 마주하고 있는 옛길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던 중, 지나가던 트럭이 멈추고는 운전사가 내리더니 사진을 왜 찍냐고 따졌다.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하남교산지구가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이 지역의 경관을 기록하러 왔다"고 하니, 자신이 이 지역의 토지주인데 LH 직원이 지장물을 조사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물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업과 공업이 혼재되어 있는 하남교산지구를 관통해, 병자호란 전까지 광주군의 중심지였던 광주향교에 도착한 뒤, 여기부터 옛 동부읍사무소=옛 하남시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을 걸으면 조선시대 전기의 광주향교 - 역말2지구의 1940~60년대 개량기와집 블록 - 옛 동부읍사무소=옛 하남시청(역말로 71) - 덕풍전통시장 - 하남C구역주택재개발정비구역과 수도권 전철 5호선 연장구간으로 이어지는 하남시의 조선시대, 식민지시기, 현대, 미래를 시간순으로 살필 수 있다.

광주향교에서 북쪽으로 난 길이 중부고속도로의 아래를 지나 도로명상의 '역말로'와 만나는 부근부터 하남시의 구도심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수도권 전철 5호선 연장구간에 덕풍역을 추가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플래카드였다. 플래카드가 걸린 고층아파트단지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니, 이 지역의 역사가 얕지 않음을 보여주는 꼬불꼬불한 골목 양옆으로 집장사집, 연립주택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하남시 구도심의 개량기와집

하남시 구도심의 개량기와집


이번에 경기 하남시 역말로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하게 한 것은 이 골목길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현재 역말2지구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블록에서 확인한 개량기와집 군(群)이었다. 하남시에 1945·1961·1964년도에 준공된 개량기와집들이 남아있을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 개량기와집 가운데 한 집의 대문에는 동부농협에서 제작해준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덕풍3리' 문패가 붙어있었다. 하남시가 광주군 동부읍이던 시절의 도시화석이 아직 하남시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들 개량기와집 군에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지주조합이 설립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재개발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플래카드가 걸린 개량기와집의 소유주분은 재개발에 찬성한 것일 터이니 언젠가 재개발은 실현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남시 구도심에 이런 옛 블록이 얼마나 더 존재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1940~60년대의 개량기와집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이 역말2지구의 향방에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이렇게 뜻밖에 오래된 블록을 발견하자, 역말로 인근 지역을 좀 더 찬찬히 살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부읍 시절부터 있었을 동부초등학교와 동부중학교를 지나니, 1960~80년대의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들이 나타났다. 이 건물들에는 여러 관변 단체와 사회 단체들이 입주해 있었다. 이 건물들이 예전에 관공서로 쓰이다가, 관공서가 신축 이전하면서 뒤에 남은 건물을 다른 단체들에 임대해 주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경비실을 찾아가 여쭈어보니 과연 동부읍사무소와 하남시청이 있던 곳이었다. 이로써 역말로가 하남시 구도심을 관통하던 메인 스트리트였음이 확인되었다.

하남의 과거, 하남의 미래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하남시 전경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하남시 전경


옛 하남시청에서부터 지하철 하남시청역까지의 사이에 자리한 지역에서도 옛길들의 흔적이 뚜렷이 확인된다. 이 길들은 농촌 광주 시절의 논길·밭길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임을 옛 지도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아파트단지가 서 있는 엘칸토㈜ 공장부지와 천주교회 주위의 길을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인공위성 사진과 비교해볼 수 있겠다. 졸저 '갈등도시'의 강남편에서는 서울 강남구의 대치동 구마을과 그 서쪽 지역에서 농촌시절 영동의 길들이 확인된다고 말씀드린바 있다. 현대 한국처럼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된 한국 같은 나라의 도시에서는 이런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답사한 것은 아직 수도권 전철 5호선 2단계 연장구간이 개통되기 직전인 2021년 3월 상순이었다. 그 후, 최근 5호선이 하남시 동북쪽 끝의 하남시 버스환승 공용차고지 근처까지 개통되었다. 하남시를 답사하면서, 이 5호선 연장구간 개통을 둘러싼 여러 요구를 담은 플래카드를 사방에서 보았다. 어떤 역은 노선이 지하로 가는데 왜 어떤 역 주변은 지상선이냐, 자기 지역에도 역을 만들어달라, 등등.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아무튼 지하철이 개통되었으니 미사지구를 포함한 하남시의 대서울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하남시의 대서울화가 성남·용인의 확장 강남화와 맞물려 광주시의 대서울화를 촉진시킬지, 아니면 동남쪽으로 경계를 접하고 있는 양평·이천과 비슷한 특성을 광주시가 한동안 유지할지도 아울러 지켜볼 지점이다.

글·사진=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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