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인물]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
뇌연구원 올해 설립 10주년 "뇌연구는 시대적 요구"
생체신호전달 효소 세계 첫 규명
지난해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지 못해"
"코로나19 바이러스 뇌 공격 가능성"
"뇌은행에 전국서 기증받은 뇌 142개 보관"
1만5,000여마리...전국 최대 실험동물센터
"하루에 실험용 쥐 500마리 잡은 적도"
우뇌동과 뇌연구실용화센터 곧 건립
"퇴행성뇌질환센터와 중독정서연구센터도 필요"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이 1일 연구원 1층 홍보관에서 "인공지능은 절대로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서 원장은 지난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김재현 기자
그 곳에 가면 1층 홍보관에 뇌파로 드론을 날리는 이색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뇌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초보 수준의 맛보기다. "나도 될까"하는 의구심은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드론을 보며 사라졌다. 대구 동구 혁신도시의 한국뇌연구원이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뇌연구 간판 기관이다. 연구원은 지난해 7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나홀로 수상한 서판길(69) 원장이 이끌고 있다. 2003년부터 이 상을 받은 우리나라 최고 과학기술인은 모두 43명이다. 그는 "뇌 연구는 과학기술 흐름상 시대적 요구"라고 말했다. 또 "인공지능이 인간 뇌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1일 한국뇌연구원에서 서 원장을 만났다.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이 1일 연구원 2층 원장실에서 국내 뇌과학과 관련한 연구 현황과 향후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뇌 연구 분야에서는 치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간이 100세를 산다고 치면 40년은 인체 구조상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기간이다. 기능 저하 현상의 하나가 치매다. 나이가 들면서 뇌세포가 죽고, 정신상태를 통제하는 기능이 망가지는 것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치매,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퇴행성 뇌질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뇌연구원은 '분자단위 뇌세포 분석'과 '신경세포 재생', '인공지능을 활용한 치매예측과 예방연구'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구원의 치매 연구 성과는.
"연구원은 올초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해 치매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지난해 7월에는 연구원의 주재열 박사가 '치매환자의 코로나 감염 취약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치매환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잘 걸린다는 연구가 있었다. 뇌와 코로나19의 상관관계는.
"코로나19 감염으로 여러 질환과 후유증이 생기고 있다. 폐 선호도가 높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간접적으로 뇌에 들어가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연구는 장비 싸움이라고 한다. 뇌 연구 장비는 좀 더 특별할 것 같다.
"뇌는 다른 신체기관과 달리 이상징후가 생길 때 조직을 떼내 연구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다. 또 뼈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도 연구에는 걸림돌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뇌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광학영상장비 등 첨단장비 134대를 가동중이다."
-연구원에는 한국뇌은행과 실험동물센터도 있던데.
-"뇌은행에는 전국에서 기증 받은 뇌 142개를 보유하고 있다. 전국 7개 병원에서 뇌를 관리하고 있다. 필요할 때 뇌조직을 추출해 연구한다. 실험동물은 번식력이 높은 쥐를 중심으로 99계통에 1만5,000여 마리가 있다. 국내 최대 실험동물실이다. 미국서 연구할 때 하루에만 500마리가 넘는 쥐를 잡은 적이 있다. 30초 안에 뇌를 꺼내는 작업을 계속 하다보니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연구원 뒷편에는 실험 동물들의 희생을 기리는 수혼비(獸魂碑)가 세워져 있다."

한국뇌연구원 뒷편에 뇌연구 도중 희생된 실험 동물들을 위한 수혼비(獸魂碑)가 세워져 있다. 김재현 기자
-뇌과학자가 보는 인공지능의 발전과 한계, 인간과의 공존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 작동 원리를 제대로 흉내낼 필요가 있다. 현재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 진척도는 100만분의 1 정도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뇌 연구가 진척될수록 인공지능의 기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종합적 분석을 이끌어내는 재주는 있지만, 인지와 판단 능력은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쉽게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다."
-뇌를 소재로 한 미래영화가 많다. 뇌 연구는 어디까지 확장될 것으로 보나.
"영화 '메트릭스', '아바타'가 대표적이지만 뇌과학은 과학적 접근방법으로 원리를 규명하고 성과를 응용해야 한다. 뇌신경세포가 소통하고 작동하는 원리만 알아도 기초와 응용 분야에서 다양한 파생 학문과 산업영역을 만들 수 있다. 뇌 기능을 향상시키고 신체 재활 수준을 넘어 원천적으로 신체와 지적 능력이 강화된 '트랜스 휴먼' 시대가 곧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30여년간 인체의 세포와 분자, 기관 간 신호를 전달하는 '생체신호전달' 경로를 연구했다. 그러다 세계 처음으로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효소 '포스포리파아제(PLC)'를 규명했다. 또 뇌에서 PLC 3종을 분리해 유전자를 확인했다. 인체도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암과 당뇨 등 질환을 일으키게 된다. 생명현상의 기본 개념인 신호전달 과정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면 진단, 치료법 개발이 가능해진다. 포스텍과 울산과학기술원 등에서 교수로 활동 중인 제자 59명을 괴롭힌 덕분에 상을 받게 됐다. (웃음) 그리고 이 과정에 소가 2,000마리나 희생됐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대구 동구 한국뇌연구원을 방문해 뇌파로 작동하는 드론을 지켜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대구의 뇌연구 인프라는 어떤가.
"대구는 5개 의과대학, 2개 한의대, 4개 약대 등 교육시설과 12개 종합병원, 포항의 방사광가속기, 경주의 양성자가속기 등 생명과학분야의 최고 핵심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고속국도와 KTX, 공항을 통해 3시간 내 접근성을 가진 나라에서 지역 개념은 무의미하다."
-개인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는.
"아직까지 정신분열증에 대한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게임 중독이나 정서불안, 조현병 등 정신의학적 질환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병인학 연구를 통해 매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 목표다."
-뇌연구원의 미래 청사진은.
"연구원은 정부출연기관이다. 뇌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최고의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뇌연구는 과학기술 흐름상 시대적 요구다. 뇌의 작동원리를 규명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곧 들어설 우뇌동과 뇌연구실용화센터 뿐만아니라 퇴행성뇌질환센터와 중독정서연구센터도 절실히 필요하다."
●약력
△서울대 수의학과 △포항공대 교수·연구처장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연구부총장 △서울대 수의과대학 겸직교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사업추진위원장 △국제뇌연구협의회 운영위원 △한국뇌연구원장
정리=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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