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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첨단제조업 美 투자의 그늘

입력
2021.05.3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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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삼성ㆍ현대차ㆍSKㆍLG 44조 투자 미국행
기업엔 미래 교두보, 나라 경제엔 경고등
국내 제조업 활성화 위한 투자촉진 시급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내 기업인들에게 세 차례나 '생큐'를 연발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내 기업인들에게 세 차례나 '생큐'를 연발했다. 연합뉴스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 기업인들에게 세 번이나 ‘생큐’를 연발하던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자평한 것처럼 정상회담은 우리로서도 성과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 정부로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추진할 동력을 유지하고, 정상 간 스킨십과 경제ㆍ백신 협력 등을 통해 한ㆍ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한 점 등을 다행스럽게 여길 만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위해 우리가 미국에 준 선물은 막대하다. 대표적 선물은 삼성ㆍ현대차ㆍSKㆍLG 등 우리 4대 그룹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제조업에서 총 44조 원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을 확정 발표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이번 투자 유치의 의미는 단순 비즈니스를 넘어선다.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구축하려는 첨단제조업 공급망에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지속적 협력을 확인했다는 게 중요하다. 바이든이 ‘생큐’를 연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투자는 우리 4대 그룹으로서도 시장 접근과 지속성장의 든든한 교두보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절실했다고 본다.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현지 설립을 위해 19조2,000억 원의 투자계획을 밝힌 삼성전자의 경우, 추후 미국 측과의 인센티브 협상이 핵심 현안으로 남아 있지만, 대만 TSMC 등과의 경쟁구도 등을 감안하면 ‘윈윈 게임’이 될 공산이 크다.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과 낸드솔루션 등 R&D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전기차의 경우, 대중화는 중국이 다소 앞선 것으로 평가되지만 북미시장의 잠재력은 막강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 내 전기차 생산 및 충전 인프라 확충에 8조3,000억 원을 투자키로 한 현대차의 선택도 글로벌 미래차 선두업체의 지위를 다지기 위한 야심찬 포석인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현지 배터리 투자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막대한 잠재시장과 연결할 매우 좋은 기회를 선점하는 효과를 누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기업들의 첨단제조업 투자가 기둥뿌리 뽑혀가듯 일거에 미국으로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결코 편할 수 없다. 불가피하다고 해도, 우리 기업들의 설비투자, 특히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 축이 될 첨단제조업 투자의 해외 이전은 그만큼 국내 산업경쟁력과 좋은 일자리 창출 여력을 훼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국내 제조업 기반은 날로 약해지고, 관련 고용도 1992년 이래 위축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직접투자는 연평균 12조4,000억 원에 달했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연평균 4조9,000억 원에 불과했다. 결국 같은 기간 직접투자 순유출액은 연간 7조5,000억 원이 됐고, 그로 인한 일자리 유출량은 매년 4만9,000개에 달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과거 삼성전자 인도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한국에도 더 많이 투자해 달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6월 2일 4대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에서도 비슷한 당부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부만으론 부족하다. 이번처럼 핵심 설비투자의 대규모 해외 이전이 불가피한 경우, 협력사들의 국내 잔류를 위해서도 해당국에 관련 부품ㆍ소재 수출에 대해 관세 특례를 요청하는 등의 대응적 통상외교를 구조화해야 한다. 나아가 이제부터라도 산업 전반의 국내 투자를 활성화할 실효적 유인책을 서둘러 재정비할 필요가 크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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