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 코인판, 이대로는 안된다]
<하>이용우·김병욱·양경숙 의원 '가상자산관련법' 발의
시세조작·내부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방지 방점
홍콩·싱가포르는 기관투자자만 '증권형 토큰' 거래
법 제정 앞서 민간협회 통한 '자율규제' 필요성도
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경고' 발언 이후 가상화폐 제도화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정부가 가상화폐 시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이와 관련한 불법 행위도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금세탁 방지'에만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가 최근 가상화폐 사업자 관리를 금융위원회에 맡기는 미봉책을 내놨지만, 가상화폐 제도화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업계 안팎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가상화폐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제도화를 논의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이런 방향의 가상화폐와 관련한 법안이 쏟아지며 본격 논의를 예고하고 있다.
불공정 행위 하면 5배 벌금… 매달 금융위 보고 의무도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가상자산업법(이용우 의원)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김병욱 의원)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법률(양경숙 의원) 등 가상자산 제도화를 위한 세 개의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세 법안은 가상화폐 관련 사업자로 가상자산거래업과 가상자산보관관리·지갑서비스(이용우·양경숙 의원), 가상자산업(김병욱 의원), 가상자산발행업(양경숙 의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가상자산 관련 사업자는 특정한 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로부터 인가를 받거나, 금융위에 등록해야 한다. 기존 주식 시장과 유사한 형태의 규제를 통해 공정한 거래를 이끈다는 취지다.
이용우, 김병욱 의원 안 기준으로는 가상자산거래소를 등록할 때만 인가 대상이지만, 가장 엄격한 양경숙 의원 안은 가상화폐 관련 모든 사업자는 금융위 인가를 받아야 한다.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자기자본 5억(이용우, 김병욱 의원)~30억 원(양경숙 의원)이 필요하다.
각 법안은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금지한다. 사업자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예치금은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도 담았다. 투자자를 위한 보호장치다. 불법 행위를 하면 최고 5년 이하 징역, 2억 원 이하의 벌금(양경숙 의원)을 내야 하고, 불공정거래를 했을 때는 회피한 손실의 최대 5배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공시 의무나 금융위 보고 의무를 부여한 법안도 있다. 김병욱 의원 안은 △가상자산 발행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 △가상자산 거래에 따른 위험 △교환·매매보관 수수료 △세금에 관한 사항 등을 온라인에 공시하도록 했다. 양경숙 의원 안은 여기서 더 나아가 3개월마다 업무보고서를 공시하고, 이와 별도로 매달 금융위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정부도 우선 차관회의를 거쳐 금융위가 가상사업자 관리와 감독, 관련 제도 개선을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세 의원이 발의한 법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가상화폐를 규정하는 특정경제금융정보법(특금법)만으로는 투자자 보호, 불공정 거래 방지 등에는 한계가 있어, 적어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준의 법 체계가 별도로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인호 고려대 블록체인연구소장은 “적어도 시세조작, 내부정보 이용 등 불공정 거래를 막고 가상화폐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정도의 투자자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증권’, 독일 ‘금융투자상품’… “소비자 보호 위해 제도화 필요”
선진국들은 이미 가상화폐 관련 제도를 정비해 이용자를 보호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블록체인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2016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에 대한 자금세탁방지와 이용자 보호 규정을 도입했다. 가상화폐 교환업자에 대해 등록 의무와 행위 규제를 도입하고, 계좌개설 시 본인확인 의무 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와 홍콩도 가상화폐 제도화에 앞장섰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증권형 토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이를 구매하거나 발행, 유통할 수 있는 공인 라이선스(RMO·Recognized Market Operator)를 부여했다.
홍콩 역시 증권형 토큰을 중심으로 가상화폐를 제도권에 들인 경우에 해당한다. 디지털자산플랫폼 ‘OSL디지털시큐리티즈’는 지난해 12월 홍콩 증권선물거래위원회(SFC)에서 증권사 라이선스를 받기도 했다. 다만 싱가포르와 홍콩 모두 개인투자자의 이용이 제한되고 기관 투자자만 증권형 토큰 거래를 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선 가상화폐를 투자 상품으로 제도화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가장화폐가 증권의 정의를 충족할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증권 감독 규율을 적용하도록 했다. 교환 매체로 기능할 때는 은행비밀보호법을 통해 법정화폐와 유사한 규제 대상으로 취급한다. 독일은 은행법에서 “암호화폐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연방금융감독청 지침을 통해 규제를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대한 제도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빠르게 바뀌는 가상화폐 시장 특성상 우선 민간협회를 통한 자율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 소장은 “가상화폐 세상에서의 1개월은 기존 금융의 1년과 같아서 6개월이 걸려 법이 제정되면 이미 낡은 법 신세가 될 것”이라면서 “은행연합회와 유사하게 책임과 권한을 가진 민간 협회가 산업발전과 소비자 보호를 주도하고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모니터링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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