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3외국어는 수어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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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3외국어는 수어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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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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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농인은 말을 못 하는 사람일까? 예전에는 청력에 손실이 있는 사람을 농아(聾啞)인이라고 일반적으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농아’라는 단어는 농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꺼리는 말이 되었다. 왜냐하면 아(啞)는 ‘말을 못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칼럼의 제목처럼 농(聾)인은 손과 표정의 언어를 사용해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어(手語, sign language)라는 시각적 정보를 고도로 체계화한 시각 언어이다. 그러므로 농인은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소리의 언어에 자음과 모음, 문법과 억양이 있듯 수어에도 수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다섯 가지의 수화소가 있다. 모두 시각적으로 변별 가능하다. 두 손의 형태를 뜻하는 수형(handshape)은 30개 정도가 있고, 수화 행동의 위치를 뜻하는 수위(location)는 23개 정도가 있으며, 손의 움직임과 양손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모두 49개의 수동(movement)이 있고, 손바닥, 손등, 손가락의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수향(orientation)과 손이나 손가락 이외에 다른 신체 부위의 동작이나 표정을 포함하는 비수지기호(non-manual signs or facial expression)으로 이루어진다. 청인이 말을 할 때 사용하는 몸짓과 제스처와는 차원이 다른 체계적인 언어인 것이다.

‘반짝이는 박수소리’라는 농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 농인 부부가 수어를 쓰면서 아주 생동감 있는 표정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청인인 내가 주로 보아 왔던 뉴스 오른쪽 아래 편의 파란 동그라미 안에서 수어를 하는 통역사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발표할 때의 통역사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그 다름의 이유가 다큐 주인공들의 활발한 개인적 특성 때문인가 궁금했다. 그래서 작년까지 나의 학생 조교였고 올해 2월에 졸업 후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수어 통역사로 일하는 졸업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어는 표정을 통해 소리의 언어에 있는 억양과 감정이 표현되고, 표정을 통해서 대단히, 정말, 아주 많이, 엄청나게 등과 같은 정도의 차이를 표현한다고 한다. 뉴스나 방역지침 발표는 음성언어 자체의 억양이 단조롭고, 내용에 감정 표현 같은 것은 들어가 있지 않으니 수어 통역사분들의 표정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예능프로그램을 수어 통역하는 것을 보면 뉴스 통역과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표정의 표현은 수어의 중요한 요소여서 코로나 방역지침을 설명할 때에도 통역사는 마스크를 끼지 않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듯 수어도 한국 수어와 미국 수어가 다르다고 한다. 또 음성 언어에 말투가 있는 것처럼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른 말투가 존재하고 또 사투리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졸업생이 포항에서 쓰던 한 수어 표현을 썼더니 경기도에서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졸업생과 통화를 마치며, 학생으로 옆에 있을 때 나도 수어를 한번 배워볼걸, 내가 손가락에 장애가 있어서 수어 표현이 잘 안 될 것 같아서 나서지 못했다는 말을 하니, 한 손이 없는 농인도 수어로 말이 잘 통하는 것을 보았다며, 수어는 꼭 양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표정이나 몸짓이 매우 중요해서 나도 수어를 배우면 충분히 농인들과 의사소통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돌아보면 주변에 수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고, 또 지금도 명색이 수어동아리 지도교수인데 수어를 배우는데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삶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한다. 제3의 외국어로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했는데 이제 한국 수어를 배워볼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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