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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크랩케이크? 270년 전통의 체서피크 특별식

입력
2021.05.29 08:30
수정
2021.05.30 23:3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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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크랩케이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찬 겸 단독회담에서 크랩케이크를 놓고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조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찬 겸 단독회담에서 크랩케이크를 놓고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조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지난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찬을 가졌다. 단독 회담 형식으로 37분 동안 이뤄진 오찬의 메뉴는 크랩케이크였다. 크랩케이크라니, 그건 또 어떤 음식인가. 인터넷을 검색해도 파는 음식점이 나오지 않고, 고작 크랩케이크에 쓴다는 양념(seasoning)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해외 직구로나 살 수 있으니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설문 조사 결과도 크랩케이크의 낯설음을 뒷받침한다. SNS 트위터의 기능을 활용해 ‘크랩케이크를 알고 있었는가?’라는 무기명 설문을 24시간 동안 돌렸다. 총 809명이 응한 가운데 결과는 ‘몰랐다, 최근 정상회담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다’가 68%(550명), ‘알고 있었다’가 32%(259명)였다. ‘대게빵은 들어보았다’라는 반응과 더불어 ‘몰랐다’와 ‘알았다’가 근 7 대 3의 비율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크랩케이크라는 음식이 익숙하지 않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나름 우리에겐 역사 속의 음식이 된 크랩케이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전남 여수의 게장이 유명하듯 미국 워싱턴 북부에 있는 메릴랜드주의 지역 특산물도 꽃게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남 여수의 게장이 유명하듯 미국 워싱턴 북부에 있는 메릴랜드주의 지역 특산물도 꽃게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메릴랜드주의 특산물 '크랩'

크랩케이크는 대체 무슨 음식인가. 어묵을 영어로 ‘피시 케이크(fish cake)’라 일컫듯 동물, 즉 게의 자잘한 살점을 뭉쳐 지지거나 튀겨낸 음식을 일컫는다. 쪄 발라낸 게살에 빵가루를 더해 수분을 흡수시키고 부피를 확보한 뒤, 마요네즈와 계란, 머스터드를 더해 전체를 한데 아우르는 한편 맛을 들인다. 다소 질퍽한 반죽이 된 게살을 둥글 넓적하게 빚어낸 뒤 기름에 튀기거나 지져서 낸다. 크로켓과 동그랑땡 중간 쯤의 음식이고, 미국에서는 재료나 반죽을 뭉쳐 튀긴 ‘프리터(fritter)’로도 분류한다.

왜 크랩케이크였을까. 일단 백악관 측에서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의 식성에 맞춘 메뉴’라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워싱턴을 둘러싸고 있는 메릴랜드(북)와 버지니아(남)주는 미국 게의 핵심 산지인 체서피크만(灣)을 공유한다. 미국의 동해안(대서양)은 원래 갑각류의 산지로 유명한데, 보스턴을 비롯한 뉴잉글랜드 지역은 바닷가재, 메릴랜드는 게가 특산물 수준으로 유명하다. 맥락이 이렇다 보니, 여수에 가면 게장을 먹어야 하듯 메릴랜드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할 정도로 주의 대표 음식 대접을 받는다. 또한 메릴랜드의 게는 우리가 게장을 담가 먹는 바로 그 꽃게이다.

그런데 고작 게살 크로켓 같은 걸 먹는다고? 한술 더 떠 정상회담 오찬의 메뉴로 냈다고? 크랩케이크의 조리법 이야기만 들으면 ‘뭐야, 초라한 음식이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발달된 나름의 게 먹는 문화가 있다. 게장 말이다. 수율, 즉 전체 무게에서 살만 발라낸 비율이 떨어지는 작은 게(꽃게의 수율은 14%대이다)는 달인 간장에 담가 적절히 숙성시킨 살을 바르거나 빨아 먹는다. ‘산림경제’에 기록이 남아 있으니, 우리는 1600년대부터 게장을 먹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맥락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양에는 우리처럼 날것의 해산물을 먹는 문화가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지 않고, 불에 익히지 않은 게는 더더욱 먹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에서 게를 먹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익혀 살을 발라내거나 아예 가공된 자숙 제품으로 음식을 만든다. 껍데기가 아예 식탁에 등장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게 먹는 방식 가운데는 품격이 있는 축에 속한다. 크랩케이크나 샐러드, 수프 등의 요리로 분류할 수 있는 음식이 속한다.

두 번째는 그냥 통째로 찌거나 삶아 먹기이다. 게라면 일단 장을 담그고 아니면 탕을 끓여 먹는 우리 식문화와 비교하면 뭔가 싶겠지만 나름의 세계가 존재한다. 일단 찌든 삶든 게를 비롯한 갑각류를 조리할 때에는 반드시 특유의 양념을 쓴다. 맛을 보면 사실 우리의 라면 스프와 굉장히 흡사한, 한마디로 짜고 매운 양념이다. 셀러리소금, 후추, 고춧가루, 파프리카가루 등의 조합인데 지역별로 쓰는 제품이 다르다. 이번 만찬에 등장한 메릴랜드를 비롯한 동부에서는 올드 베이 시즈닝(Old Bay Seasoning)을,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남부에서는 자타레인(Zatarain’s)을 쓴다. 이 둘은 양념과 향신료로 유명한 맥코믹의 소유로 대표적인 제품일 뿐이니 주, 혹은 동네별로 좀 더 세분화된 양념을 쓸 수도 있다.

그냥 쪄서 먹는다면 물에 식초를 타서 끓이는 가운데 양념을 뿌린 게를 올려 익히면 끝이다. 한편 그보다 그나마 섬세한 조리로 ‘보일(boil)’이 있다. 단어가 말해주듯 갑각류를 물에 넣고 삶는데, 양념과 더불어 옥수수, 소시지, 조개 등 다른 재료를 함께 넣어 맛을 우려낸다. 쪘든 삶았든, 이렇게 준비한 갑각류는 두툼한 갱지를 깐 식탁에 냄비째 쏟아 놓고 포크, 나이프, 접시도 없이 그냥 먹는다. 메릴랜드라면 딸려 나오는 작은 나무 망치로 게 다리를 두들겨 부숴 살을 발라 내서는 졸여 수분을 날리고 지방만 남긴 정제버터에 찍어 먹는다. 뉴올리언즈의 특산물인 가재라면 그조차도 필요 없이 그저 맨손으로 먹는다. 예외가 있다면 보스턴을 중심으로 한 뉴잉글랜드 지방일 텐데, 바닷가재는 크고 비싸므로 랍스터롤을 만들어 먹는다. 삶아 발라낸 바닷가살을 깍둑썬 셀러리와 버무려 핫도그빵에 얹어 만든다.

크랩케이크의 전성기는 게살 가공이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91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크랩케이크의 전성기는 게살 가공이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91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크랩케이크의 기원

그렇다면 크랩케이크는 유서 깊은 음식일까. 오찬 후 몇몇 매체에서 크랩케이크에 대해 가볍게 다루는 가운데, 기원 관련 두 가지 설을 소개했다. 첫 번째는 크랩케이크가 아메리카 원주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음식이라는 설이며, 두 번째는 1930년 요리사 크로스비 게이지(Crosby Gaige)가 ‘뉴욕 세계 박람회 요리책’에 수록하면서 ‘크랩케이크’라는 이름이 굳어졌다는 설이다. 특히 두 번째의 크로스비 게이지의 이야기는 크랩케이크의 정설처럼 통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주민이 운영하는 메릴랜드의 음식과 역사 기록 사이트 ‘올드 라인 플레이트’가 밝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메리카 원주민이 크랩케이크를 먹었다는 설의 출처는 제임스 미치너(1907~1997)의 소설 ‘체서피크(Chesapeake)’이다. 미치너는 소설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게살에 콘밀(cornmeal, 굵게 빻은 옥수수가루, 죽을 쑤어 먹거나 튀김옷으로 쓴다)을 더해 뭉쳐서는 곰 기름에 지져 먹었다고 쓴 바 있다. 기름이나 프라이팬을 쓴 기록은 163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렇다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크랩케이크 같은 음식을 해먹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조리의 난이도(높은 온도)나 조리에 쓰이는 기름의 양을 감안해야 하며, 당시에는 식재료를 한데 끓여 먹는 스튜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크랩케이크가 속하는 프리터는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주에서 18세기, 아프리카의 전통 조리법으로 통하고 있었다.

둘째, 크랩케이크는 크로스비 게이지가 요리책에 수록하기 이전에도 문서로 남아 있었다. 이미 1891년과 1894년에 똑같이 크랩케이크라 이름 붙인 음식의 레시피가 책에 실린 바 있으며, 1901년의 요리책에도 묽은 반죽에 게살을 더해 부치는 팬케이크 같은 요리가 같은 명칭으로 소개된 바 있다. 심지어 1747년의 요리책에도 게 스튜와 크랩케이크의 중간 단계 같은 요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따라서 크로스비 게이지의 80년조차도 결코 짧다고 볼 수 없겠지만, 관점에 따라 크랩케이크는 130년에서 270년의 세월을 품은 음식이다. 만 모든 정황을 감안한다면 크랩케이크의 전성기는 게살 가공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910년대 이후라고 보아야 한다.

크랩케이크 집에서 만들려면

크랩케이크,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지역의 상징적인 음식인 데다가 역사도 짧은 미국에서 나름 유서 깊은 음식이다. 그렇다면 메뉴만 놓고 대통령이 홀대를 받았다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크랩케이크 레시피를 준비했다. 전문지 ‘푸드 앤 와인’의 2012년 6월호에 수록된 레시피로, 조리법은 무척 간단하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양념은 뺐다.

◆재료

게살(통조림) 450g,

계란 1개, 풀어 준비한다

소금 크래커 20개, 곱게 부순다

마요네즈 115g

디종 머스터드 1큰술

우스터소스 1큰술

핫소스 ½작은술

식용유 60ml

썬 레몬, 곁들여 낼 것

◆조리법

1. 공기에 마요네즈, 계란, 머스터드, 우스터소스를 더해 거품기로 고르고 매끈하게 섞는다.

2. 중간 크기의 볼에 게살과 부순 크래커를 더해 골고루 섞은 뒤 1의 마요네즈를 더해 잘 버무린다. 플라스틱랩으로 덮어 냉장고에 1시간 이상 둔다.

3. 2의 게살 반죽을 8등분해 둥글게 빚은 뒤 손바닥에 돌리고 다른 손으로 가볍게 눌러 두께 4㎝ 남짓한 패티를 만든다.

4. 3의 반죽을 한꺼번에 지질 수 있는 크기의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중간 센불에 올려 달군다.

5. 기름이 반짝이며 흐르는 듯 보이면 3의 반죽을 올려 노릇해지고 속까지 익도록, 각 면을 3분 정도 지진다.

6. 지진 크랩케이크를 접시에 담고 썬 레몬을 곁들여 낸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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