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1년여 동안 인터뷰나 토론회를 통해 만난 정치인들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질문하곤 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야 적극 옹호했지만 대다수는 “찬성하기 어렵다”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대선 주자, 서울시장 후보, 당대표 출마자 등이 여기 포함됐다. 지난해 6월 KBS 조사에서는 국회의원 300명 중 69명만 찬성(반대 25명, 나머지 답변 거부)했다. 국가인권위 국민인식조사에서 88.5%가 찬성한 것과 비교하면 놀랍도록 미온적이다.
□ “교회의 항의”를 이유로 든 정치인은 솔직하기라도 하다.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면서도 입법에 반대하는 이들을 중립적이라 할 수 있을까. 1년 전 미국에서 백인 경찰에 의해 목이 눌려 죽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캠페인이 들불처럼 번졌을 때 ‘백인 생명은 소중하다’는 맞구호는 인종차별에 복무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 문구가 쓰인 배너가 영국 맨체스터 축구장 상공에 펼쳐졌을 때 영국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 중립을 가장해 차별의 본질을 흐리는 주장은 드물지 않다. “호남 차별만 문제냐, 영남도 차별받는다”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은 비장애인 역차별이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인종차별의 대상은 백인이 아니고, “대통령이라 차별받는다”는 말에 공감할 국민은 없다. 차별 사회의 그늘이 누구에게나 미칠 수 있다 해도 이 사회가 권력자, 고학력자, 비장애인, 이성애자를 차별한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적 차별·혐오는 기울어진 권력 구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 2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오른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이 사흘 만에 4만 명 넘는 동의 서명을 받았다. 10만 명 이상 동의하면 국회 상임위에 회부된다. 지난해 한 달간 2만5,000명이 동의한 것에 비하면 빛의 속도다. 청원서를 쓴 성차별 면접 피해자는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로 (입법을) 외면”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이며 “국회가 국민의 인식을 따라오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7년 이후 8번째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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