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에스파(aespa)가 SMP의 배턴을 이어받았다. 동방신기 이후 여러 SM 소속 아티스트를 거치며 표류하던 SMP가 제대로 된 새 주인을 만난 모양새다.
에스파는 지난 17일 새 싱글 'Next Level(넥스트 레벨)'을 발매하고 데뷔 첫 컴백에 나섰다. 지난해 발매한 '블랙맘바' 이후 약 6개월 만의 컴백을 향한 반응은 뜨거웠다. 이들은 '넥스트 레벨'로 첫 국내 음원차트 1위에 올라섰음은 물론 각종 해외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넥스트 레벨'은 영화 '분노의 질주 : 홉스&쇼 (Fast & Furious: Hobbs & Shaw)'의 동명의 OST를 에스파만의 색깔로 리메이크한 힙합 댄스곡이다. 해당 곡이 발매 이후 데뷔곡인 '블랙맘바'보다 더욱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이 곡에서 느껴지는 진한 SMP의 향기 때문이었다.
SMP란 'SM Music Performance'의 약자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 가수들이 부르는 퍼포먼스 위주의 댄스곡을 뜻한다. SM 대표 프로듀서인 유영진의 디렉팅 속에서 탄생한 SMP는 비장한 멜로디와 사회비판적인 가사가 인상적이며, 부조리한 세상을 비판하고 혼돈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심오한 메시지를 전한다. 한 곡 안에 여러 장르가 포함된 듯한 다채로운 편곡 역시 SMP의 특징 중 하나다.
SM을 대표하는 장르로 불려왔던 SMP의 계보를 이어왔던 곡은 H.O.T. '전사의 후예', S.E.S. 'Twilight Zone', 보아 'ID; Peace B', 동방신기 'Rising Sun' '트라이앵글' 'O-正.反.合.', 엑소 'MAMA', 에프엑스 'NU ABO', NCT '무한적아' 등이다.
'넥스트 레벨'의 디렉팅을 맡은 유영진 프로듀서는 '분노의 질주' OST를 리메이크하되, 후렴 구간에 다채로운 장르 변주를 새롭게 덧붙이며 SMP 스타일로의 재탄생을 이끌었다.
특히 후반부 "언제부턴가 불안해져가는 신호/ 널 파괴하고 말거야 We want it/ Come on Show me the way to KOSMO Yeah"로 이어지는 후반부 하이라이트를 맡은 윈터에게는 팬들로부터 '유영진이 성대로 낳은 딸' 이라는 독특한 수식어까지 얻으며 큰 호평이 줄이었다. 깔끔하게 찌르는 듯한 고음과 특정 음에서 목을 긁어 만들어내는 소리까지 보아, 최강창민 등의 뒤를 이을 만한 SMP 대표 보컬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였다. 또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지젤의 쫀득한 랩과 카리나의 강단있는 보컬, 닝닝의 안정적인 음색과 실력 역시 에스파 표 SMP를 완성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에스파가 배턴을 이어 받은 SMP의 미래에 더욱 큰 기대가 모이는 이유는 이들이 SM 가수들 중 가장 SMP에 적합한 세계관과 콘셉트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데뷔곡을 통해 에스파와 이들의 아바타인 'ae'(아이)의 연결을 끊게 만드는 악의 존재인 '블랙맘바'를 알렸던 이들은 신곡을 통해 에스파와 '아이'의 연결을 방해하고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블랙맘바'를 찾기 위해 'KWANGYA'(광야)로 떠나는 세계관의 여정을 그려냈다. 이같은 세계관은 곧 부조리한 세상을 비판하고 혼돈 속에서 자아(또는 희망)을 찾아간다는 SMP의 주된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그간 SMP에 도전했던 SM 소속 가수들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곡을 통한 갑작스러운 콘셉트 변신으로 일각의 당혹감을 자아냈던 것과는 달리, 에스파는 세계관 그 자체로 SMP의 당위성을 갖게 된 셈이다. 에스파가 큰 위화감 없이 SMP와 어우러지며 특유의 음악색을 잘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00년대 다수의 SMP 곡들을 선보였던 동방신기 이후 f(x) 소녀시대 엑소 NCT 등 많은 소속 가수들 역시 한 번씩은 SMP에 도전하며 음악적 스펙트럼 확장을 알려왔다. 하지만 과거처럼 SMP를 콘셉트 전면에 내세우는 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실제 SM 스타일의 곡을 선호하던 음악 팬들의 사이에서 'SMP는 맥이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가운데 등장한 에스파의 존재는 분명 SMP의 새로운 부활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멤버들의 역량, 장르를 뒷받침할 독보적인 그룹의 세계관, SMP 장르의 부흥을 이끌어왔던 대표 프로듀서의 디렉팅까지. 이들은 이미 완벽한 삼박자를 갖춘 듯하다. 데뷔 후 첫 컴백만으로 이들의 존재감은 확실히 각인됐다. 이제 이들이 2021년 형 SMP를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 갈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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