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고 메우고, 또 덜어내고 메우고, 그러면 요철이 나오고, 두께가 나오고, 높이가 나오고, 선이 나와. 하얀 그림 속에 전부 높이가 다 달라."(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작가와의 인터뷰)
단색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정상화(89) 화백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건설 현장 노동자의 작업 과정을 연상케 한다. 작가는 캔버스에 고령토를 덮고, 그것이 마르면 떼어내 그 자리에 물감 메우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캔버스 뒷면에 미리 가로 세로 실선과 대각선을 그려 놓은 터라 주름을 잡듯 캔버스를 접으면 화면에 균열이 나타나고 고령토를 뗄 수 있다. 작가 개인전을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 내리는 작가의 작품에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가 집약돼 있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리는 노동 집약적 행위는 고도의 인내심과 육체적 몰입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를 대변하는 단색조의 격자형 화면 구조가 확립된 건 1970년대 초반이다. 작가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마침내 ‘뜯어내고 메우기’라는 독창적인 방법론을 발견해낸다. 앞서 작가는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을 위해 브라질에 들렀다 우연히 보게 된 광경에 푹 빠져들었다. 도로를 공사하는 인부들이 돌을 네모나게 잘라 바닥에 놓고는 모래를 덮어 길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작가는 인간의 힘으로 브라질 곳곳에 도로가 확장되고 있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1973년 전후) 작가의 작품에는 그리드(격자 형식의 무늬) 기법이 나타난다.
수행(修行)하듯 작업하는 방식 때문일까. 정상화 개인전을 관람한 원로 여류시인 김남조 시인은 “그림에서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안도감이 느껴진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 역사에 있어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일궈 온 정상화 화백의 화업을 총망라하고 재조명하는 전시다. 작가가 1953년에 그린 자화상부터 2000년대에 제작한 대형 추상회화작까지 총 100점이 전시 돼 있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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