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1년 4개월째 공전>
"선거 땜에" "청문회라" 정치활동 이유 불출석
민주당 공판 6개월 만에…法 "기일 지정" 독촉
"입법자들이 사법 절차 협조 않아" 비판 눈총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저지를 위해 2019년 4월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내 문화체육관광부 회의장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기소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가 사건 발생 2년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주요 피고인인 전·현직 의원들이 정치활동을 이유로 잇따라 기일을 변경하고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1년 4개월째 공전하면서 재판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2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성보기)와 형사합의12부(부장 오상용)는 각각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 및 보좌관 등에 대한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당 측 피고인은 황교안 전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포함해 27명, 민주당 측 피고인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포함해 10명에 달한다.
2019년 4월 25일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하려는 민주당과 이를 막으려는 한국당 사이의 폭행·감금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뒤, 양측이 서로를 고소·고발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검찰은 사건 접수 8개월 뒤인 작년 1월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폭행 등 혐의로 수사를 마무리해 '늑장 기소' 논란이 일었다. 형사소송법 257조는 검사가 고소·고발에 따른 범죄를 수사할 때 3개월 이내에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국회의원들 수사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재판은 수사보다 더 늘어지고 있다. 한국당과 민주당 측은 각각 통상 한두 차례 열리는 공판준비기일만 4차례와 6차례를 거쳤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도 의원들이 의정활동 명목 등으로 기일변경과 불출석을 반복하면서 일정이 수시로 지연됐다. 24일 열린 한국당 사건 공판에선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당 대표 선거를 이유로 불출석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2019년 4월 국회 의안과 앞에서 저지하려는 당시 자유한국당 당직자들과 밀고 들어가려는 민주당 당직자 간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오대근 기자
민주당 사건의 경우 지난해 11월 25일 열린 두 번째 공판 이후 3차례 기일이 연기됐고, 6개월 만인 26일 가까스로 세 번째 공판이 열렸다. 보다 못한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박범계 장관 등 민주당 피고인들에게 기일을 미리 지정하라는 공판준비명령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주민 의원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대행으로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며 불출석했다.
피고인 일부가 출석하지 않을 경우 재판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통상적 사건이 아니란 점을 감안해도 재판이 이례적으로 지연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며 "일부 피고인이 불출석한 채 증인심문과 증거조사가 이뤄지면, 불출석 피고인에게는 증거조사 효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방어권 행사를 고려해 똑같은 절차를 재차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민주당 공판에서도 지난 공판에 불출석한 피고인이 있었던 탓에, 직전 기일에 진행했던 검찰 측 영상 증거조사를 반복했다. 박주민 의원 불출석으로 다음 기일에도 이날 공판에서 다뤘던 절차를 다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0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년 형사합의부 사건 1심 처리 기간은 평균 5.3개월이었다. 법원은 1심 구속기한이 최대 6개월인 점을 감안해 6개월내 선고를 권고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의 경우도 올해 1~4월 형사합의부 1심 처리 기간은 평균 7개월을 넘기지 않았다. 피고인가 많고 정치적 사건이란 특수성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정작 본인들과 관련한 사법 절차에는 협조하지 않는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들에게 출석을 촉구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심 중이다. 재판부는 이날 민주당 공판에서 "바쁘더라도 재판 진행을 위해 협조해주길 부탁한다"며 "중대한 사유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면 기일 외 증인심문이라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이 직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강수를 두지 않는 한 시간을 끄는 피고인들을 법정에 세울 수는 없다"며 "일반 피고인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따라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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