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삼키는 '코로나 블랙']<하>걸음마 우울 대책
평소 우울, 불안에 시달리던 직장인 이모(33)씨. 올해 초 처음으로 경기 의왕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았다. 큰 기대는 없었다. 병원 상담은 기록이 남을 것 같아서, 민간상담센터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싫었다. 공공센터는 무료라니까 한 번 가봤을 뿐이다. 그런데 상담 횟수가 거듭될수록 스스로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씨는 "직장이나 대인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 정도만 기대했는데, 그간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다양한 내 모습을 되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내일 당장 내가 없어져도 상관없겠다"고까지 생각했다던 20대 김모씨도 지난해 서울시가 시행한 '청년 마음건강 심층상담'으로 우울감을 극복했다. 무기력한 상태에 푹 빠져 있었던 김씨에겐 상담 신청 자체가 도전이었다. 상담 초기엔 상담 자체도 힘들어 '이런다고 내가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상담을 받아보라 적극 추천한다.
두 사람의 얘기는 한결같다.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자체만으로도 후련하고 생각이 정리된다", "어려움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계속 찾다보니 어느새 더 나아진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등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2030 청년들의 좌절, 절망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들에 대한 정신상담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정신상담'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 때문인지 정부 대책은 환자 수준의 고위험군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젊은 시절의 정신 건강이 평생 지속되는 만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접근법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신상담 폭증 ... 거부감 없는 청년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를 계기로 처음 도입된 '청년 마음건강 심층상담' 서비스엔 한 해 동안 4,016명이 몰려 들었다. 목표인원 3,000명을 훌쩍 넘긴 것이다. 청년 마음건강 심층상담 서비스는 서울시에 사는 만 19~34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5~7회 무료상담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코로나19 때문에 만들어진 만큼 당시 서울시는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모집규모를 확대하고 3,309명을 뽑아 상담을 진행했다.
올해도 그렇다. 올해는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데 지난달 마감된 1차 모집에서 정원 1,000명에 1,817명이 지원했다. 다 내칠 수 없어 최종적으론 1,679명을 뽑았다. 폭발적인 상담수요를 확인한 서울시는 상담 대상 연령을 올해부터 '만 39세'로 확대하고, 상담사도 118명에서 128명으로 늘렸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고립 등 영향으로 전반적인 정신상담 수요 자체도 증가세다. 전화만 하면 보건소나 시·군·구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으로 연결해주는 전국 공통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 상담건수를 봐도 2019년 상반기 6만7,233건, 하반기 8만1,869건, 2020년 상반기 9만1,822건, 하반기 10만8,650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올해에도 1~4월에만 상담 건수가 7만1,513건에 달해 지난해 20만 건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추세엔 두 가지 해석이 붙는다. 하나는 2030세대가 힘들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심층상담'도 진행했는데, 넉달 동안 이용자 중 2030세대가 57.5%를 차지했다. 또 다른 이유는 상담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지금 청년들은 초?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상담실 '위(Wee) 클래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담을 접한 경험이 있다. 기성세대와 달리 정신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다. 현장에서는 앞으로도 청년층의 정신상담 수요는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력, 예산 등 청년 정신상담 인프라는 부족
문제는 정신건강 정책이 지나치게 '중증질환자 치료'에 집중돼있는 데다 전문인력 및 인프라가 부족해 체계적인 지원이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신건강 분야 전문인력은 인구 10만 명당 16.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97.1명의 16% 수준이다. 병원에 비해 접근이 쉬운 민간 심리상담센터는 2,800여 개 기관에서 남발한 자격증 문제 때문에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민관협력도 자살예방 이외에는 딱히 뚜렷한 것이 없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는 "올해부터 정책 대상자를 기존 정신질환자 및 고위험군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상황이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체 보건 예산의 5% 이상을 정신건강 분야에 투자하라고 권장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1.6%에 불과하다. 지난 1월 우리 정부도 "2025년까지 2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연간으로 따지면 4,000억 원 수준에 그친다. 전체 보건 예산의 2.9%로, WHO 기준엔 훨씬 못 미친다.
청년의 정신건강, 보편적 지원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만성 정신질환 대부분이 25세 이전에 발병하고, 16~24세 청년 25%가 정신건강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코로나19 때문'을 넘어서서 청년기 정신질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청년들은 알아서 대처하거나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건당국뿐만이 아니라 전 부처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이고 보편적인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은 "청년의 정신질환에는 경제적 문제, 취업난, 학업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홍보와 인식개선도 중요하다. 2019년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7%, 정신건강복지센터 서비스를 안다는 대답은 15.5%에 그쳤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는 "정교한 지원책, 초기 개입 정책 등을 잘 설계하고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꼽으라면 홍보와 인식확대"라며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어디를 통하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제도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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