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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미술관 품은 사찰…누대에 오르면 청아한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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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미술관 품은 사찰…누대에 오르면 청아한 물소리

입력
2021.05.25 17:00
수정
2021.05.25 18:04
21면
0 0

이야기 품은 곡성의 사찰 넷
계곡 좋은 도림사, 조태일 시인의 고향 태안사
심청 전설 간직한 관음사, 미술관 품은 성륜사

곡성읍 도림사 보제루 앞으로 난 창으로 짙은 녹음이 액자처럼 걸려 있다.

곡성읍 도림사 보제루 앞으로 난 창으로 짙은 녹음이 액자처럼 걸려 있다.

초파일을 넘긴 사찰은 큰 잔치를 치른 대갓집마냥 고요하다. 불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색깔 고운 연등은 그대로 남아 있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즐기기에 오히려 제격이다. 곡성에는 크게 이름나지는 않아도 개성 넘치는 4개의 사찰이 있다. 시인을 품은 태안사, 미술관이 있는 성륜사, 심청의 전설이 서린 관음사, 누대 앞에 시린 계곡이 펼쳐지는 도림사를 소개한다.

곡성읍 동악산 자락의 도림사는 신라시대에 승려 원효가 창건했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그러나 지역에선 절의 역사보다 계곡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사찰 입구 보제루 누각에 오르면 세 개의 창으로 계곡의 녹음이 액자처럼 걸린다. 짙은 그늘 아래 암반 위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하다. 계곡의 아홉 절경 중 4곡 단심대, 5곡 요요대, 6곡 대은병이 바로 코앞이다. 널찍하고 평평한 반석 위로 맑은 물줄기가 비단처럼 흐르고 있어 예부터 ‘삼남에서 으뜸’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바위 위에 이곳을 거처간 수많은 묵객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도선국사·사명당·서산대사 등 고승들도 한동안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곡성읍 도림사 앞은 물소리가 청아한 계곡이다. 사찰 담장도 녹색 이끼에 덮여 있다.

곡성읍 도림사 앞은 물소리가 청아한 계곡이다. 사찰 담장도 녹색 이끼에 덮여 있다.


도림사 계곡의 9개 절경 중 3곳이 바로 도림사 앞에 있다. 넓은 암반에 이곳을 다녀간 문인들의 표식이 새겨져 있다.

도림사 계곡의 9개 절경 중 3곳이 바로 도림사 앞에 있다. 넓은 암반에 이곳을 다녀간 문인들의 표식이 새겨져 있다.


곡성을 대표하는 사찰은 누가 뭐래도 죽곡면 태안사다. 신라 경덕왕 1년(742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한때는 구례 화엄사, 순천 송광사, 하동 쌍계사 등 인근의 유명 사찰을 말사로 거느린 절이었다. 1925년 이곳을 찾은 최남선은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극찬했다. 하늘과 땅이 생겨난 태초부터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다. 고려 무신정권과 조선의 억불정책에 밀려 쇠락하고, 한국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지금은 화엄사의 말사로 위세가 줄었지만 고찰의 기품은 여전하다.

큰길에서 사찰 입구로 들어서면 약 1.5km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나무가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길이다. 이 흙길에 매료돼 일부러 걷는 방문객이 많다. 계곡을 따라 탐방로도 조성됐다. 계곡을 가로질러 세운 능파각은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고려 광종 때 세운 광자대사탑과 탑비, 대바라와 동종이 보물로 지정돼 고찰의 맥을 잇고 있다.

곡성 죽곡면 태안사 전경.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오래된 절이지만 현재 건물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 세웠다.

곡성 죽곡면 태안사 전경.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오래된 절이지만 현재 건물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 세웠다.


태안사 입구의 능파각. 계곡을 가로질러 세속에서 불가로 들어가는 다리다.

태안사 입구의 능파각. 계곡을 가로질러 세속에서 불가로 들어가는 다리다.


태안사 아래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반지하처럼 지면에서 한 층 낮게 지었다.

태안사 아래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반지하처럼 지면에서 한 층 낮게 지었다.


기념관 내부에 '타는 가슴으로'라는 글자로 완성한 조태일 시인의 초상이 걸려 있다.

기념관 내부에 '타는 가슴으로'라는 글자로 완성한 조태일 시인의 초상이 걸려 있다.


사찰 아래에는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이 있다. 태안사는 조태일(1941~1999) 시인이 태어난 곳이다. 일제강점기 그의 부친은 태안사의 주지스님이었다. 1964년 경희대 재학 중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인은 줄곧 세상의 폭압에 언어의 칼로 맞서고, 국토의 소중함을 노래한 실천 문인이었다. 기념관 안내판에 그의 대표작 ‘국토서시’가 적혀 있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로 시작된다. 유품과 시작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에서 단연 눈길을 잡는 것도 ‘타는 가슴으로’라는 문구로 형상화한 그의 초상화다. ‘저 식민지시대 말 해동선풍 꽃피운 동리산 태안사 솔바람 소리 가운데 태어남이 이미 시인의 운명을 태에 감았다’고 소개한 안내문이 산사의 적막 속에 메아리친다.

옥과면 성륜사의 고택. 구례 김택균 가옥의 안채로 사랑채를 그대로 옮겼다.

옥과면 성륜사의 고택. 구례 김택균 가옥의 안채로 사랑채를 그대로 옮겼다.


성륜사의 아산조방원미술관. 현재 '엄마, 엄마의 꽃밭'을 주제로 한 네 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성륜사의 아산조방원미술관. 현재 '엄마, 엄마의 꽃밭'을 주제로 한 네 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옥과면에는1988년 청화스님이 창건한 성륜사가 있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절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두 채의 고택이 단아한 기품을 뽐낸다. 구례에 있던 김택균 가옥의 안채와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 승방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마당 아래 석불원에는 호남 남종화의 맥을 잇는 조방원(1926~2014) 화백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사찰을 짓는 데에 청화스님의 도반이었던 그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절에서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아산조방원미술관’이 있다. 화백이 평생 모은 간찰과 서화, 서첩, 목각판 등 7,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2층은 그의 작품을 비롯해 소장품을 순환 전시하고, 1층은 지역 작가들을 위한 전시장으로 이용된다. 현재는 ‘엄마, 엄마의 꽃밭’을 주제로 한 네 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옥과면 관음사 극락전. 방문객이 많지 않아 산사의 고즈넉함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옥과면 관음사 극락전. 방문객이 많지 않아 산사의 고즈넉함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가곡리 오층석탑. 관음사를 처음 창건한 자리라 전해지는데, 현재는 탑만 남아 있다.

가곡리 오층석탑. 관음사를 처음 창건한 자리라 전해지는데, 현재는 탑만 남아 있다.


인근 관음사는 곡성이 ‘심청의 고장’이라는 근거로 삼는 사찰이다. 1930년대 김태준의 ‘조선소설사’에 소개된 관음사 창건 설화 ‘원홍장 이야기’를 심청전의 근원 소설로 보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하면 관음사는 백제 분서왕 때인 서기 301년 창건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물론 확인되지는 않았다. 백제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훨씬 후인 384년이다. 현재 전각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 건물이다. 국보로 대접받던 원통전과 금동관음보살좌상 역시 전란 중에 소실됐다. 절 앞마당까지 차가 가지만 방문객이 많지 않아 산사의 고즈넉함이 그리울 때 찾을 만한 사찰이다. 절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가곡리 오층석탑’이 있다. 관음사가 처음 세워진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산자락에 잘 생긴 석탑 하나만 있지만 운치는 번듯한 사찰 못지않다.

곡성=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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