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해도 '반쪽짜리' 우려… 일본과 올림픽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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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해도 '반쪽짜리' 우려… 일본과 올림픽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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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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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도쿄올림픽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은 하계올림픽을 세 번이나 유치했지만, 1년 미뤄진 2020년 도쿄올림픽이 올해도 순조롭게 열리지 못한다면 성공한 올림픽은 단 한 차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 김일영

◇글로벌 팬데믹 속 도쿄올림픽은 개최될 수 있을까?

2020년 도쿄올림픽은 과연 개최될 수 있을까? 지난해 신종 바이러스라는 암초를 만나 올림픽이 일 년 뒤로 연기된 바 있다. 연기된 개막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행사를 정상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악화 일로다. 한동안 주춤하던 환자가 다시 늘어나며 매일 수천 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중이다. 개최 연기를 결정했던 지난해보다도 오히려 상황이 안 좋은 것이다. 백신 공급도 시작은 되었지만 인구 대비 접종 속도가 느려서 집단 면역에 도달하기까지는 요원하다. 일본뿐 아니다. 선제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국제 행사에 선수단을 파견할 만큼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 아직 전세계가 글로벌 팬데믹의 기나긴 터널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한 차례 연기한 것만으로도 개최국의 경제적, 정치적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축한 올림픽 경기장과 선수촌도 허사가 될 판이고, 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우후죽순으로 생긴 숙박, 관광시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유력한 우익 정치인이 도쿄올림픽은 ‘저주받았다’는 표현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개최가 되더라도 반쪽짜리라는 혹평을 면하기 어려울 터이지만, 정치적 부담을 떠안고 중지를 선언할 리더십도 부재하다. 개막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2020년 도쿄올림픽’(개최가 일 년 연기되어도 정식 명칭은 ‘2020년 도쿄올림픽’이다)은 강행하든 중지하든 ‘실패한 올림픽’ 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일본이 하계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지금까지 세 번이었다. 그 중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할 만한 것은 단 한 번뿐이다.

◇한 번의 ‘사라진 올림픽,’ 한 번의 ‘성공한 올림픽’

일본은 올림픽 개최권을 자진 반납했던 흑역사가 있다. 1931년 일본군이 만주 지역을 무력 침략해 괴뢰 정부를 세운 이른바 ‘만주사변’ 직후. 일본 정부는 서양인의 전유물이던 올림픽을 도쿄로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한다. 아시아 대륙에서 최초로 큰 국제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는데, 만주사태로 악화되는 국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외교전의 의미도 있었다. 1936년,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총회에서 1940년 도쿄 하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었다. 하계 대회 개최국이 동계 대회 개최지 결정에서 우선권을 갖는다는 당시 관행에 따라, 같은 해의 동계올림픽도 일본 삿포로 개최가 결정되었다. 도쿄 외곽에 주경기장 예정지가 결정되고 부설 경기장 건설 준비도 한창이던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복잡하게 얽힌 열강들의 대립 속에서 영국과 미국 등이 도쿄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급기야는 IOC에서 일본 정부에 개최권 반환을 요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쟁 물자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커지면서 일본 국내에서도 올림픽 준비를 위한 자원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던 중이었다. 1938년 일본 정부는 하계, 동계 올림픽 개최권을 차례로 반납했다. 도쿄와 경쟁했던 헬싱키(핀란드)가 올림픽 개최권을 이어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1939년) 로 이마저 쉽지 않았다. 1940년, 올림픽은 어디에서도 열리지 못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나치 권력이 정치 선전을 위해 스포츠 행사를 악용한 최초이자 최악의 사례였다.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1940년 도쿄올림픽도 준비 과정에서도 그에 못지 않게 호전적인 의도가 드러났었다. 예를 들어,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한 올림픽 성화를 극동지방으로 운반하는 것이 난제로 부상했다. 성대한 가두 퍼레이드를 벌이며 성화를 봉송하는 관행은 베를린올림픽 때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나치 정부를 이끌던 히틀러는 올림픽이 독일 민족의 우월함을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성화 퍼레이드는 게르만 민족이 유럽 문명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가시화하는 이벤트로 기획되었다. 일본 정부도 이를 충실히 본받았다. 당시의 운송 기술로서는 그리스에서 지핀 횃불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먼 섬나라로 운반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 IOC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중국 내륙과 한반도를 지나 육로로 성화를 운반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식민주의 약탈과 전쟁으로 소요가 끊이지 않는 이들 지역을 관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군함을 활용해 해로로 운반하는 방안, 혹은 일본제 전투기(이후 ‘가미카제호’라고 불리게 되는 최신 정찰기)에 성화를 싣고 남아시아를 횡단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했다. 성화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다른 나라에 군사적 우월함을 과시할 기회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만에 하나 1940년 도쿄올림픽이 개최되었다면, 일본 제국주의의 오만한 폭주가 얼마나 더 극단적으로 치달았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 수포로 돌아간 1940년 올림픽과는 대조적으로, 1964년 도쿄올림픽은 ‘성공한 올림픽’이었다. 한 차례 개최권을 반납한 뒤 어렵사리 다시 유치했다는 의미도 각별했지만, 패전 이후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써 온 일본 사회가 대내외적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베를린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스포츠 경기를 TV로 중계하는 실험이 이루어졌다면, 도쿄올림픽에서는 인공위성으로 전파를 송출해 지구 반대편으로 리얼타임 영상을 보내는 생중계가 최초로 실현되었다. 지금은 스포츠 중계의 필수 요소인 ‘슬로 모션’, 즉 선수들의 움직임을 느린 화면으로 재현하는 방송 수법도 이때에 처음 등장했다. 또 최첨단 시계와 컴퓨터를 이용한 실시간 기록 관리도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경기 기록을 그 자리에서 즉시 확인,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 결과를 올림픽 공식 기록으로 확정할 때까지 몇 달이 걸리곤 했다. 도쿄올림픽에서는 다양한 경기의 생중계가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경기 기록을 실시간으로 발표하게 되었으니, 스포츠 중계의 기술적 토대가 비로소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을 전후로 세대별 TV 보급률도 23.6%(1959년)에서 90%(1965년)로 급등했다. 어떻게 보자면 1964년 도쿄올림픽의 최대 수혜자는 매스미디어라고도 할 수도 있다.

◇‘미디어 이벤트’라는 올림픽의 민낯을 직시할 필요

‘1940년 도쿄올림픽’은 공공연한 전쟁 야욕 속에서 추진되다가 바로 그 전쟁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반면, ‘1964년 도쿄올림픽’은 매스미디어와 자본의 강력한 협력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세기의 감동’을 준 이벤트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2020년 도쿄올림픽’은 개최 여부와 무관하게 인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국가주의를 추진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일본 사회는 한 번의 ‘사라진 올림픽’, 한 번의 ‘성공한 올림픽’을 경험했고, 2021년 또 한 번의 ‘실패한 올림픽’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성찰할 것인가? 일본 사회가 받아 든 큰 숙제다.

한편, 근대 올림픽은 권력과 자본의 충복 역할을 자처하면서 덩치를 키워 온 것이 사실이다. 국가 권력과 자본의 이익을 위해 기획된 일종의 ‘미디어 이벤트’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즐기는 수많은 이들의 열정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역시 올림픽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 본질을 직시하는 것은 미디어 이벤트가 범람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김경화 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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