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크릴 오일이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최근 ‘크릴 오일 100%’로 선전하는 제품 일부가 콩기름 등을 섞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행정 처분을 받았다. 녹십초 크릴오일(녹십초생활건강), 미프 크릴오일 맥스(스마트인핸서), 크릴오일 1000(순수식품), 프리미엄 리얼메디 크릴오일 58(JW 중외제약) 등이다.
얼마 전에는 크릴 오일이 비만ㆍ고혈압ㆍ치매ㆍ뇌졸중ㆍ노화를 예방하거나, 코로나19까지 예방ㆍ치료하는 것처럼 표시 또는 광고하다가 식약처에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홈쇼핑ㆍ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크릴 오일 41개 제품 가운데 12개 제품(29%)에서 항산화제인 에톡시퀸과 추출 용매(헥산, 아세톤, 초산에틸, 이소프로필알코올, 메틸알코올 등)가 기준을 초과해 식약처가 전량 회수한 바 있다.
◇‘펭귄 먹이’ 크릴이 건강에 좋다고?
2018년 12월 크릴 오일 제품이 출시되면서 국내에서 크릴 오일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크릴 어획량이 급증하면서 노르웨이와 중국에 이어 남극해 크릴 조업국 3위에 올랐다.
크릴은 남극 해역에 서식하는 플랑크톤의 일종이다. 남극에 사는 펭귄과 고래, 해표, 가마우지, 남극 대구, 남극 빙어 등 남극에 사는 모든 동물의 주식으로 다양한 상위 포식자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먹이사슬의 뿌리다.
크릴은 이산화탄소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조류를 먹은 크릴은 바다 깊이 들어가 배설한다. 크릴 배설물이 탄소를 바다 깊은 곳까지 이동시켜줘 지구의 탄소 순환에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크릴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면서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크릴을 주식으로 하는 아델리 펭귄의 개체 수가 80% 줄었다. 카밀라 협약(CCAMLRㆍ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국제협약)을 통해 크릴을 보전하기 위해 어획량을 제한하고 있지만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크릴 개체 수가 급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크릴 제품 판매 중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크릴 오일, ‘일반 식품’에 불과
크릴 오일은 한마디로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일반 식품에 불과하다. 국내 유통 중인 크릴 오일 제품은 ‘어유’ ‘기타 가공품’ ‘기타 수산물 가공품’ 등의 식품 유형으로 판매되고 있는 일반 식품에 불과하다.
식약처는 “크릴 오일에 함유된 성분인 인지질이나 아스타잔틴 효능ㆍ효과를 광고해 크릴 오일 제품이 항산화 효과 등이 있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인지질 기능을 과장하고 있다. 사실 인지질은 특별한 성분이 아니다. 우리 몸에서 지방의 핵심 역할은 세포막을 구성하는 것과 잉여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이다. 지방으로 된 세포막이 없으면 세포 안의 물질이 금방 밖으로 빠져나가 생명을 잃는다.
비누가 살균 효과를 가지는 것은 세균 세포막을 녹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구성돼 있고, 모든 세포는 인지질 세포막으로 감싸져 있어 인지질이 전혀 특별한 성분은 아니다.
크릴 오일 업체에서 일반 기름은 물에 녹지 않아 흡수가 잘되지 않지만 크릴 오일은 인지질 때문에 물에 잘 녹아 흡수가 잘된다고 선전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지방보다 5~8배나 잘 흡수된다고 주장한다.
식품공학자인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최 대표는 “그들 주장대로 일반 지방이 흡수가 잘되지 않으면 그동안 배웠던 영양학 지식이나 칼로리 이론을 버려야 한다”며 “만일 일반 지방 흡수율이 크릴 오일의 절반에 불과하다면 지방 칼로리를 지금의 절반으로 계산해야 하고 흡수율이 5분의 1이라면 지방이 탄수화물과 단백질보다 훨씬 칼로리가 적은 다이어트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식품이든 인지질이 있으며, 달걀 노른자의 경우 크릴 인지질보다 몇 배나 많다. 더구나 인지질은 우리 몸에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합성이 가능하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는 “크릴 오일에 인지질이 많다고 광고하지만 인지질은 우리 몸속에서 합성할 수 있어 구태여 먹을 필요가 없다”며 “인지질에는 필수지방산인 오메가3가 많이 함유돼 좋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역시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덧붙여 의사가 일부 크릴 오일 제품을 광고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인이 나오는 광고는 소비자가 제품 구매를 결정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홈쇼핑ㆍ인터넷 쇼핑몰 등에 의사ㆍ한의사ㆍ교수 등이 나와 허위ㆍ과장 광고하는 제품에 대한 점검을 더 강화하겠다”고 했다.
현행법상 의사ㆍ한의사 등 의료인이 제품을 ‘지정ㆍ공인ㆍ추천ㆍ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표시하거나 광고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직도 종합 편성 채널(종편) 등에서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면서 소비자를 기망하는 ‘쇼 닥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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