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가게로 돌진한 택배차에 숨진 60대 여성
아들 부양 받으려 가게 내놓은 상황에서 참변
산행 나선 60대 여성도 부근 지나다가 희생
"제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장사하시면서 절 키우셨어요, 힘든 내색 한번 없이. 그런 어머니한테 더 살가운 아들이 되지 못했던 게 가장…"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30대 남성 구모씨는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은 현실이 믿기지 않은 듯 말끝을 흐렸다. 구씨의 어머니 김모(62)씨는 전날 오전 11시 금천구 시흥동의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가 운영하던 과일가게 앞 도로에서 난 사고 때문이었다. 5톤 택배 차량이 마주 오던 1톤 트럭과 충돌한 직후 인도로 돌진, 5층짜리 건물과 그 오른쪽 과일가게가 있는 단층 건물을 들이받고 화재를 일으켰다.
유족에 따르면, 김씨 부부는 거주지인 영등포구에서 장사를 하다가 월세가 더 싼 곳을 찾아 2년 전 금천구로 가게를 옮겼다. 주변 상인에 따르면 초반엔 김씨와 남편이 교대로 장사를 하다가 얼마 전부터 김씨만 가게를 지켰다고 한다. 인근 교회 관계자는 김씨에 대해 "과일뿐 아니라 여름엔 뻥튀기, 겨울엔 붕어빵까지 팔면서 숨 돌릴 틈 없이 일했던 사람이었다"며 "얼굴에 활기가 없어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20년 넘게 고단하게 장사하며 키운 아들 구씨가 최근 헬스 트레이너가 돼서 부모님을 부양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김씨 부부는 몇 달 전 가게를 내놓은 상황이었다. 과일가게를 매일 오전 11시 열고 오후 9시 닫았다는 게 상인들의 말이니, 김씨는 전날 가게 문을 열자마자 참변을 당했을 것이다. 구씨는 "어제도 어머니가 평소처럼 강아지와 놀다가 출근하셨는데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몰랐다"며 "살가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9남매 중 일곱째인 김씨와 가장 친했다는 남동생 선욱(60)씨는 "이달 17일이 누나 생일이라 노량진시장에서 회를 잔뜩 사다가 먹었던 게 며칠 전인데,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허망해 했다. 김씨는 "경찰이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을 보여줬는데 가게 문 밖에 앉아 있던 누나의 가슴팍 쪽으로 트럭이 돌진했다"며 "대기업 택배 차량이던데 조화도 못 받은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친 이 사고의 또 다른 희생자는 문모(60)씨다. 경찰에 따르면 문씨는 김씨 가게 부근을 지나가다가 택배 차량에 들이받혀 숨졌다. 금천구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문씨의 동네 친구들은 "매일 계모임에서 (사고 장소 인근에 있는) 호압사로 등산을 가는데, 그날은 비가 와 고인 남편이 등산을 말렸던 것으로 안다"며 "화를 낼 줄 모르는 참 착한 친구였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사고 당시 택배 차량 돌진으로 건물에 설비된 변압기와 가스 배관이 파손되면서 큰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피해를 입은 5층 건물의 1층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던 A(70)씨는 "평생 그렇게 큰 굉음은 처음이었다"며 "나와 아내 모두 깨진 유리창에 긁혀 근처 병원으로 이송돼 처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현재 정확한 차량 충돌 경위와 폭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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