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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한 그릇의 의미

입력
2021.05.22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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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속담은 참으로 많다. 우리말에는 ‘금강산도 식후경’이 있고, 일본어에는 ‘꽃보다 경단’, 영어에서는 ‘빵 한 덩이가 새 노래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생존과 직결되는 먹거리를 어디 구경거리에 감히 비교할 수 있으랴? 한국인은 밥 하나면 모든 인사를 다 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밥에는 각별한 의미가 들어 있다. 가벼운 얼굴로 ‘밥 먹었어?’나,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밥은 챙겨 먹고 다녀?’, 아쉬움을 담아 ‘밥 한번 먹자’면 모든 인사가 되니 말이다.

우리말에서 먹는 것은 일정한 때를 지키는 ‘끼니’와, 그 외의 ‘군것질’로 크게 나뉜다. 끼니를 거른 사람이 시장기를 모면할 정도로 먹는 것을 요기한다고 하고, 밥이 아닌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때는 ‘에운다’고 한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면 허기부터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볼가심, 입매, 초다짐’ 등 음식을 조금 먹어 시장기를 지우는 것을 뜻하는 ‘애피타이저’ 격에 해당하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여유로운 말도 있으나 찬찬히 살펴보면 ‘눈물겨운 밥’이 더 많은 것 같다. 국이나 물 없이 먹는 밥이라는 ‘강다짐’, 반찬 없이 먹는 밥인 ‘매나니’, 반찬이 곧 소금이라는 ‘소금엣밥’도 있다. 차린 게 없는 상이라도 국이나 기본 찬이 없는 밥상에 대한 연민이 보인다. 고용살이하면서 얻어먹는 ‘드난밥’, ‘눈칫밥’은 먹는 이의 처지를 말한다. 굶다가 갑자기 많이 먹는 ‘소나기밥’, 너무 거칠어서 두 번은 삶아야 한다는 ‘곱삶이’ 또는 ‘꽁보리밥’, 찬밥에 물을 부어 다시 지었다는 ‘되지기’ 등도 먹고 사는 고단함을 담았다.

새잎의 달이라는 오월, 초록 나무들 사이에 눈처럼 하얀 꽃을 덮어쓴 나무가 눈에 띈다. 푸짐하게 담은 흰 쌀밥 한 그릇이 연상되는, 이름하여 ‘이팝나무’다. 꽃이 쌀밥과 비슷하다고 ‘쌀나무’라고도 하며, 이 나무에 꽃이 풍성하게 피면 그해 벼농사도 풍년으로 점쳤다고 한다. 그런데 이팝나무, 조팝나무의 꽃은 하필이면 5월에 필까? 지난가을에 거둔 곡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아물지도 않은 5월 보릿고개에 ‘쌀나무’가 보이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이 나무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하는 한 집안의 어머니들에게 한 그릇 수북이 담아 놓은 쌀밥으로 보였던 것일까? ‘이밥에 고기 국’이라는 말이 아득하고 흰 쌀밥은 매일 볼 수 있는 지금, 내 앞에 놓인 쌀밥 한 그릇에 감사해야 할 것을 이팝나무가 가르쳐 준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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