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 서창록 고대 교수
지난해 3월 '성북구 13번 코로나19 확진자'로 불려
"확진자 차별 말아야…인권 문제 사전 점검을"?
"인권위, 적극 나서고 확진자 정신 건강도 살펴야"
"외국에서 '한국인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받아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명약관화 외국인 차별입니다. 심지어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서울시가 말이죠."
한국인 최초로 유엔 인권기구인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자유권위원회) 위원이 된 서창록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1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대 캠퍼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서울시의 외국인 노동자 전수조사 정책을 거듭 비판했다. 서울시는 해당 정책을 발표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철회했다.
시민적·정치적권리위는 유엔 회원국들의 인권 관련 규약을 이행하도록 감독·권고하는 기구로, 선거를 통해 선출한 국제인권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지난해 외교부도 대대적인 선거 운동에 나설 정도로, 위원 배출을 위한 각국의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진다.
서 교수는 방역을 이유로 인권을 놓치는 사례가 많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 정책 전 분야에 걸쳐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코로나19로 개인정보 통제 및 인권 침해 요소가 곳곳에서 드러났는데,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면 사전에 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가 방역을 더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이지만, 인권을 강조하는 건 본인이 코로나19로 인권 침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지난해 3월 유엔 학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확진 이후 그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유엔 위원', '교수', '서창록'으로 불렸지만, 귀국 이후에는 '성북구 13번 확진자'로 통했다. 음압병동 내 폐쇄회로(CC)TV를 통해 24시간 감시받아야만 했다. 통증이 심해 타이레놀 한 알을 삼키려는 순간 병실 내 스피커로 '환자분 그 약 먹지 마세요'란 말을 들어야 했다.
주변에선 '뭘 했길래 감염이 됐냐'며 죄인 취급하는 수모를 견뎌야 했다. 그는 "코로나19가 내 삶을 뒤엎었다"고 표현했다.
서 교수는 앞서 3월 코로나19 감염 기간 자신이 경험한 인권 침해 문제를 엮은 에세이 '나는 감염되었다'를 출간했다.
서 교수는 서울시의 외국인 노동자 전수조사와 과도한 확진자 신상·동선 공개, 자가격리 대상자에 대한 전자팔찌 부착 등을 방역 당국이 인권을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코로나19로 국민을 범죄자 취급해선 안 돼"
-자가격리 위반자들에게 착용하게 한 전자팔찌 '안심밴드'를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감염병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 자유를 침해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방역과 관련 없는 부분까지 한 게 문제다. 전자발찌는 성범죄자들이 차는 건데, 정부가 자가격리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거 아닌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조치였다. 2주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방역보다 인권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을 봐라. 개인정보, 사생활을 중시한 탓에 방역을 제대로 못 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았나. 방역이냐, 인권이냐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게 문제다."
"CCTV 강화 좋은 것만 아냐…사생활 없는 사회는 위험"
서 교수는 우리나라가 개인정보, 사생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 사건이 터지면 'CCTV 확대'부터 요구하는 데 대해 의문을 표했다. 그러면서 인권 침해에 대해선 국가인권위원회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길 바랐다.
-감염병 방역과 인권 문제는 늘 충돌한다. 우리가 놓치는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셀카(본인을 직접 찍는 사진)를 보내달라고 하더라. 이건 정부가 내 동선을 확인하겠다는 건데 정말 충격받았다.
그런데 이게 정부 잘못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CCTV가 많으면 안전은 확보되지만,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생활이 없는 사회는 굉장히 위험하다. 과거 어린이집에 CCTV 설치 의무화가 이뤄졌는데, 미국과 유럽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19로 인권 침해 논란이 나올 때 인권위가 소극적으로 나온 게 아닌가.
"인권위도 코로나19팀을 만들어 대응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대응이 느린 편이다. 완전한 독립 기구가 아니기에 정부 비판을 조심스러워하는 입장은 이해하나, 인권 문제는 적절한 타이밍에 강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디지털 시대, 우리가 놓칠 인권 문제 많을 것…대비해야"
서 교수는 감염병 사태를 거치며 개인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이를 바로 잡을 기회라고 했다. 더욱이 디지털 기술 발달로 곳곳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할지 모르는 시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서둘러 인권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해 정책 시행 전에 인권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스 때나 지금이나 인권 논란이 나오는데 왜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을까.
"메르스 때 법을 개정하면서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 모두 미처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인권영향평가를 전 분야에서 실시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서울시는 인권센터를 운영 중인데도 외국인을 차별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인권 문제가 없는지 전문가가 사전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인권영향평가가 감염병 때문에 필요하다면 전 분야에서 실시할 필요가 있을까.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로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것도 디지털 기술 덕분이지만, 반대로 디지털 기술이 과도한 신상 공개와 함께 인권을 침해한다.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권을 보장할 수도, 침해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인종 차별이 심해진 계기가 됐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혐오와 차별은 역사 속에 늘 존재했다. 미국 내 아시아 혐오가 과거에는 없었겠나. 반대로 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 주목해야 한다.
한때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는데, 그 클럽이 성 소수자들이 찾는 클럽이란 이야기가 나오며 소수자들이 비판을 받았다. 반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차별은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코로나19로 사회 안 갈라지게 사망자도 추모해야"
서 교수는 가해자로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확진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신병 치료를 기피하는 분위기 탓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라며 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염병 유행이 지나간 뒤 정신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대처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지금 유엔에선 '코로나19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런 준비를 안 하는 것 같다. 정신병 치료를 기피하는 독특한 문화도 한몫한다.
하지만 확진자들의 정신건강을 살피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메르스에 걸린 사람들은 아직도 숨어 지낸다고 들었다. 자신을 가해자, 죄인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앞에 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을 배려하는 게 진정한 '포스트 코로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데 우리가 챙기지 않는 사람들은 없나.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사망자를 애도하는 시간이 없다. 미국과 유럽은 매일 사망자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철저한 방역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갈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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