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참여한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
"도입 취지엔 모두 동의... 운영주체 두고 입장차"
“출판사와 서점들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준비 중인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가입하실 것을 촉구합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가입하지 않는 출판사와는 앞으로 계약하지 않으려 합니다”
장강명 작가
지난 1일 장강명 작가는 SF 출판사 '아작'이 작가들에게 계약금과 인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밝히며 출판사들의 ‘출판유통통합전산망’ 가입을 촉구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은 문체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도로 개발, 오는 9월 정식 개통을 앞두고 있는 시스템이다. 지금까지는 주먹구구로 이뤄졌던 도서의 생산과 유통, 판매의 전 과정을 하나의 전산망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전산망 도입을 두고 문체부와 출판계의 입장은 엇갈린다. 대형 출판사와 유통사 등 약 700개사가 소속된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문체부가 출판전산망 사업을 진행하며 출판계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출판사들의 자발적 가입 없이 전산망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60억 원의 세금이 들어간 전산망이 이대로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전근대적인 출판 유통 시스템을 개선할 유일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은 왜 전산망 가입을 꺼리는 것일까? 7일 전산망 개발에 참여한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도서출판 따비 대표)를 만나 전산망을 둘러싼 이해관계에 대해 물었다. 박 대표는 “전산망 도입 취지에는 모두 동의한다”면서도 “운영 방식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현재 한국의 출판 유통 시스템은 전국 출판사가 신간 정보를 일일이 메일 또는 팩스를 통해 개별 서점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작은 서점은 소외될 수밖에 없고, 지방 출판사들은 매번 서울의 대형 서점을 방문해야 한다. 전산망이 도입되면 그럴 필요 없이 모든 서점과 출판사가 한곳에서 책 판매 현황과 재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2017년 송인서적 부도가 계기가 돼 개발됐지만 2001년 출판유통현대화 사업 때부터 논의되던 문제다. 왜 지금까지는 개발되지 못했나?
"논의 자체는 90년대부터 있었다. 이해 당사자 간 합의가 안 돼서 번번이 좌초됐다. 사실 대형서점 입장에서는 굳이 판매 정보를 내줄 필요가 없다. 정보는 독점하는 게 권력이니까. 또 일부 중소서점들은 세금이나 매출이 드러날까 봐 꺼리기도 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세금 등의 문제가 많이 투명해졌고,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다. 지난해 9월에 3대 대형온라인 서점인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이 판매정보 제공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전산망이 도입되면 장강명 작가 바람처럼 작가들도 자신의 책 판매 추이를 영화전산망처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될까?
"영화전산망과 일 대 일 비교를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영화의 경우 애초에 집계 목적 자체가 랭킹을 매기는 데 있는데다가 메가박스, CJ, 롯데라는 소수의 대기업이 유통을 전부 장악하고 있다. 출판도 영화처럼 모든 판매 집계가 가능하려면 전국의 모든 서점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산망 가입에 동의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이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전산망이 자리를 잡고 많은 서점과 출판사가 참여한다면 중·장기적으로 그런 부분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들은 왜 전산망 가입을 꺼리나?
"출판사들이 전산망 자체에 대해 비토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초기 사업보고서도 출판계 쪽에서 만들었다. 다만 전산망 도입 이후 운영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았다. 비슷한 출판유통시스템을 이미 운영 중인 해외(캐나다에는 북넷 캐나다, 독일에는 엠파우베, 일본에는 인프라센터가 있다)의 경우 개발과 운영 주체가 민간 기업이다. 그런데 국내 전산망은 문체부가 예산을 투입해 만들었고 이후 운영까지도 직접 도맡겠다는 상황이다. 출판계는 운영은 우리 쪽에 넘기는 것이 맞다고 본다."
운영기관을 정부로 두면 무엇이 문제가 되나.
"관에서 추진할 경우 정권이 바뀌거나 사업이 중단되면 이후 전산망 자체가 표류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출판계는 정부가 운영 주체가 될 경우 전산망이 출판사들을 강제할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시스템이 출판계 블랙리스트처럼 사용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블랙리스트, 도서정가제 등의 사례로 인해 정부를 향한 출판계의 불신이 남아 있다. 운영 주체에 대한 논의는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어떻게 해야 전산망이 안착할 수 있을까
"전산망을 이용하면 출판사도 서점도 편해지는 건 사실이다. 궁극적으로는 출판 물류 시스템까지도 개선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많은 출판사와 서점이 가입할수록 전산망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라도 합리적이고 이익이 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전산망에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부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채찍보다는 당근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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