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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도 군대 가라, 잔다르크를 본받아라' 라고요?

입력
2021.05.22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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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잔 다르크 이야기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잔 다르크 동상. 게티이미지뱅크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잔 다르크 동상. 게티이미지뱅크

어릴 때 위인전집을 읽다보면 이상했다. 내가 본받고 싶을 만한 인물이 적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여성인데 전집에 있는 위인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기에 감정이입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따금 여성 위인이 등장하더라도 선덕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여왕처럼 원래 지배계급에 있다가 남성 혈족 단절로 기회를 얻은 여성들이었다. 현실의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편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웠어도 전통적인 여성의 덕목만을 강조하는 위인전은 읽기 거북했다. 예술적 성취보다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신사임당전이 그랬다. 예외적으로 여성 전쟁 영웅인 잔 다르크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내가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은 잔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시달린 점은 다루지 않았다.

잔 다르크는 백년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끈 애국 소녀로 유명하다. 잉글랜드의 왕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며 프랑스를 침략한다. 양국은 전투와 휴전을 이어가며 116년 동안 싸우게 되는데, 이를 백년전쟁이라 부른다. 잔 다르크 생존 당시 영국은 프랑스 영토의 3분의 1이나 차지했고, 프랑스 내 독립된 영주국인 부르고뉴 공국은 영국 편을 들어 프랑스 군을 공격했다. 프랑스 왕세자 샤를 7세는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도피하는 신세였다. 이때, 잔은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샤를 7세를 찾아간다.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오를레앙에 있던 영국군을 격파하고 샤를 7세가 대관식을 할 수 있도록 랭스까지 진격한다. 이후 잔은 부르고뉴군에 포로로 잡혀 영국군에 넘겨졌다가 마녀라는 죄목으로 1431년에 화형당한다. 사후 명예 회복 재판이 열려 복권되었고 1920년에는 성녀로 시성되었다. 이상이 위인전에 서술된 잔 다르크의 이야기다.

샤를7세 대관식에서의 잔 다르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54년작.

샤를7세 대관식에서의 잔 다르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54년작.

외면된 잔 다르크의 죽음

잔 다르크의 죽음과 관련해서 특이한 사실이 있다. 당시 유럽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적장을 처형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대개 몸값을 받고 석방해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샤를 7세는 잔을 구해주지 않았다. 잔 덕분에 오를레앙에서 승리하고 랭스에서 대관식까지 올렸는데도. 샤를 7세가 랭스에서 대관식을 올린 것은 백년전쟁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프랑스에서는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려야 프랑스의 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과거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가 496년에 랭스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전례 때문이다. 랭스에서 ‘왕의 도유식’이란 의식을 치르면 왕은 신에게서 정당한 권력을 받은 자가 된다. 이후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행위는 반역죄뿐만 아니라 신성모독죄가 된다. 샤를 7세는 정신병을 앓고 있던 부왕 샤를 6세에게 친자임이 부정된 적이 있었다. 이를 빌미로 프랑스 공주와 결혼한 잉글랜드 왕이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다른 귀족들이 샤를 7세에게 저항하거나 영국 편에 가담했던 것인데, 이제 샤를 7세는 랭스에서 대관식을 올려서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왕은 잔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바로 이 점이 왕이 잔을 외면한 이유다. 샤를 7세는 천한 신분인 데다가 여자인 잔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수치로 여겼다. 또 프랑스 민중에게 잔이 지나친 인기를 얻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성녀로 추앙받는 상황은 영국군만큼이나 왕에게 큰 위협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왕은 잔을 버렸다. 한편 왕의 측근들도 잔을 버렸다. 전투에서 잔이 승리할 때는 성녀라고 믿었지만, 잔이 패배하자 그녀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을 의심했다. 한마디로, 이길 때만 우리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는 잔이 마녀로 몰려 비참하게 화형당하는 것을 모른 척했다.

잔 다르크의 죽음. 헤르만 스틸케, 1843년작. 위키피디아

잔 다르크의 죽음. 헤르만 스틸케, 1843년작. 위키피디아

잔 다르크에게 '남장죄'가 적용된 이유

당시 잔 다르크의 죄목은 이렇다. 마녀, 이단, 우상 및 악마 숭배자, 배교, 유혈 선동, 남장. 이 죄목이 잔에게 적용된 과정에는 성차별과 계급차별 문제가 있다.

일단 마녀, 이단, 악마 숭배 항목을 보자. 종교재판관들은 잔이 환영을 보고 계시 음성을 들은 것은 이단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중세인들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는 기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음성이 신의 것인가, 악마의 것인가였다. 중세 말 유럽에는 여성 신비주의자들이 대거 출현했다. 성모나 천사의 환영을 보고 신의 계시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은 이단으로 의심받고 종교 재판을 받기도 했으나 일부는 성녀로 인정받기도 했다. 성녀로 인정받은 여성들은 귀족 출신의 교양 있는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평범한 시골 처녀인 잔은 자신의 종교 체험을 지배계급 남성들에게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 결국 재판에서 마녀로 판정받았다. 잔이 미천한 계급 출신의 교육받지 못한 여성이면서 남성 사제들이 지배하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신과 직접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주장한 점은 차라리 괘씸죄였다.

이번에는 남장죄를 보자. 바지를 입은 것이 죄가 된 이유는 구약성경 신명기 22장 5절에서 연유한다. ‘여자가 남자 복장을 해서도 안 되고, 남자가 여자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 그런 짓을 하는 자는 누구든지 주 너희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신다.’ 그러나 남성의 옷을 입은 여성이라고 다 마녀로 몰리지는 않았다. 남장을 하고 성지순례를 하거나 남성 수도원에 들어간 여성들 중 성녀로 인정받은 사례도 많다. 아군의 수가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 여성에게 전투복을 입혀 동원하는 경우도 흔했다. 즉 남장 자체보다 주체적으로 남장을 하고 남성의 영역에서 활약한 것이 잔 다르크의 진짜 죄목이라고 볼 수 있다. 포로가 된 잔은 남자 옷을 입지 않기로 교회 측과 약속한다. 그러나 간수들이 강간하려 들자, 다시 바지를 입는다. 이에 교회는 약속을 어겼다며 잔을 화형대에 세운다. 단지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프랑스군이 루앙을 회복하자 샤를 7세는 1455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복권 재판을 통해 영국군이 내린 유죄 판결을 무효로 한다. 이제야 왕이 잘못을 뉘우치고 잔 다르크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다. 잔이 마녀란 죄목으로 화형당한 것은 샤를 7세에게는 정치적인 약점이었다. 마녀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잔 다르크에 대한 복권은 사실 샤를 7세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잔의 처형과 복권 과정을 지켜보면 그녀가 죽어야만 했던 진짜 이유가 명확히 보인다. 천한 계급 출신 여성인 잔 다르크의 존재와 활약은 정치적, 종교적 남성 지배자들에게 그들의 권위를 부정하는 위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일 잔 다르크 동상이 있는 프랑스 파리의 피라미드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마리 르펜(가운데) 대표가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1일 잔 다르크 동상이 있는 프랑스 파리의 피라미드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마리 르펜(가운데) 대표가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나폴레옹도, 국민연합도 잔 다르크를 이용한다

그러나 죽은 후에 성녀로 추앙하는 것은 이용가치가 높다. 잔 다르크는 두고두고 각 시대 정치세력에게 이용당한다.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은 잔을 국민 영웅으로 내세워 대 프랑스 동맹군과 맞서게 했다.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진 프랑스에서 잔 다르크는 전투적 국가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곳곳에 잔의 동상이 세워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지배하의 괴뢰 정부인 비시 정부는 독일 협력과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는 포스터의 모델로 잔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지금도 국민연합 등 프랑스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은 1875년 파리의 피라미드 광장에 세워진 잔 다르크 기마상 앞에 집결하여 시위하곤 한다.

최근에 내가 쓴 칼럼에 ‘여자들도 군대 가라. 잔 다르크를 본받아라’라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았다. 궁금하다. 그 댓글을 쓰신 분은 잔 다르크가 성폭력 위협을 받은 점을 알고 있을까? 현재 여군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한 것을 알고 있을까? 잔이 남성 지배자들의 권위에 도전한 죄로 마녀가 되었다가 그들의 이익에 따라 성녀가 된 것도 알고 있을까?

15세기 프랑스의 잔 다르크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남성에게까지 입맛에 맞는 부분만 이용당하는 것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과연 남성들에게 인정받는 여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유리할 때는 성녀이고 그 외에는 마녀로 몰릴 뿐인데. 남성들에게 찬양받아도 자신의 삶이 왜곡되어 두고두고 후대 여성을 세뇌하고 억압하는 데 쓰인다면 위인전 한 구석에 실린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점이 바로 새로운 시각에서 쓴 역사와 이야기가 여성들에게 필요한 이유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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