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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친구 성추행 2년 반 뒤 고소... 대법 "'피해자다움' 잣대로 판단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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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친구 성추행 2년 반 뒤 고소... 대법 "'피해자다움' 잣대로 판단 안돼"

입력
2021.05.17 12:29
수정
2021.05.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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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 학교 동기들과 여행서 女친구 성추행?
피해자, 사건 후 가해자와 단둘이 술 마시기도
1심 실형→2심 "피해자 진술 못 믿겠다" 무죄
대법, "진술 신빙성 배척안돼" 유죄 취지 파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생 A(여성)씨가 같은 학과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B(남성)씨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건 2016년 12월이었다. 사건은 B씨의 군 입대를 앞두고 A씨를 비롯한 대학 친구 몇몇이 1박 2일 스키여행을 가면서 벌어졌다. B씨는 여행 둘째 날 새벽 6시쯤, A씨가 잠을 자고 있는 틈을 타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A씨의 상체 특정 부위를 수 차례 만졌다.

B씨가 성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건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7개월이 지나서였다. A씨는 제대 후 복학한 B씨와 마주치자 “휴학을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필 사과편지라도 써 달라”고 했다. 그런데 A씨는 되레 B씨의 사과편지를 통해 또 다른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을 성추행한 사실을 B씨가 과 동기 2명에게 발설하는 ‘2차 피해’까지 가했던 것이다. 게다가 B씨 모친으로부터는 ‘네가 먼저 B의 성기를 만진 게 아니냐’라는 취지의 모욕적 말까지 들었다. A씨는 결국 B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B씨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B씨는 A씨 신체를 만진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다. 하지만 “A씨가 먼저 나를 만져 상호 간 스킨십을 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범행 증거로 사실상 피해자 A씨의 진술이 유일한 상황에서 양측 입장이 엇갈리자 재판 쟁점은 ‘성추행 사건 직후 A씨가 보인 모습’이 됐다. A씨가 사건 발생 이후에도 B씨와 단둘이 술을 마시거나 멀티방(TV, 컴퓨터 등이 구비된 놀이방)을 방문했던 것은 물론,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고소를 하는 등 ‘통상적인 성추행 피해자’로 보긴 어렵다는 가해자 측 반론이 제기된 탓이다.

그러나 1심은 B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뒤늦게 고소를 하는 등 다소 납득하기 힘든 모습을 보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경험칙 적용에 보다 신중함을 기해야 하는 게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A씨의 멀티방 방문은 학교에서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를 나누고 사과를 받는 과정에서 이뤄진 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소 시점이 다소 늦었던 데 대해서도 “사건 발생 후 군에 입대한 B씨가 복학하자 고소를 결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가 △피해사실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합의금 등 금전적 피해보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인정했다. 1심 법원은 “B씨는 추행행위가 인정됨에도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변명만 늘어놓으며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연합뉴스

하지만 2심 판단은 정반대였다. 항소심은 “사건 당일 A씨가 B씨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그 이후에도 멀티방에 장시간 머무는 등 B씨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별다른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었다는 점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며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피해자다움’을 보이지 않았던 만큼, 그의 ‘피해사실 진술’도 믿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대법원에서 판단은 또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B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범행 후 피해자가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A씨가 사건 발생 후 B씨와 시간을 보낸 것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보아 A씨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의 조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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