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밭에서 빵을 굽다' 첫 책 펴낸 이성규씨
CEO에서 우리 밀 연구가, 베이커로 인생 2막

13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규 더베이킹랩 대표는 직접 기른 밀과 구운 빵을 한아름 들고 나왔다. '빵 덕후'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밀 박사'가 되는 게 꿈이다. 고영권 기자
“20년 넘도록 ‘앞’만 바라보고 살아왔어요. 앞으로 남은 인생은 ‘나’를 보면서 살자 싶었죠.”
이성규(48) 더베이킹랩 대표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잘나가던 CEO(국내 자동차부품회사가 세운 한중합자회사 베이징 법인장)였다. 서울대 공대 석사, 중국 MBA 출신으로 20년 동안 해외를 누비며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지금 경기 광명 텃밭(50평 규모)에서 직접 밀 농사를 짓고 건강한 빵 만들기를 연구하는 베이커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혀를 차지만 이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어서” 후회는 없단다. ‘빵 덕후’로서 첫 책(밀밭에서 빵을 굽다)까지 펴낸 이 대표를 만나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비결을 들어봤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퇴사를 꿈꾼다. 하지만 늘 고민과 걱정에 그친다. 그는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기대 수명은 늘어난 상황에서 퇴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자기 주도 퇴사’를 위해선 먼저 나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 기뻤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렇게 교집합을 찾아나가다 보면 나의 본질,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성규 더베이킹랩 대표가 13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빵을 선택한 건 건강하고 정직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 생명을 키우는 일의 위대함을 체득했던 것 같아요.” 중국에서 멜라닌 분유 파동 등 각종 푸드 스캔들을 겪으며 '우리 아이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음식을 만들어보자'는 목표가 생겼다.
그가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빵은 ‘빵 본연의 맛을 내는,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는’ 빵이다. “빵을 만들기 위해선 밀가루, 물, 소금, 효모 4가지만 있으면 되거든요. 요새 파는 빵엔 각종 첨가물과 방부제까지 들어가 있어 문제죠.”
그는 “빵 맛을 좌우하는 건 결국 밀 맛"이라면서 ‘기본의 맛’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고 했다. 북미산, 호주산, 고대밀, 토종밀, 육종밀 등 다양한 품종 가운데 한국 토양에서 잘 자랄 수 있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우리 밀을 찾는 게 최종 목표다.
“윤여정 배우 말대로, 인생은 지그재그란 말이 딱 맞아요. 모두가 인생이 처음인데 시행착오는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신기한 건,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해도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죠.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다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끝에 그가 직접 키운 밀로 만들었다는 빵을 맛봤다. 캐나다 토종밀인 레드파이프(redfife)에 호밀과 귀리를 블렌딩해 사워도우로 발효한 깜빠뉴(시골빵)라고 했다. 처음엔 딱딱한 식감에 놀랐지만,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났고 은은하게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지며 빵의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계속 먹다 보니 맛있죠? 버터와 벌꿀을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어요!" 그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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