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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북정책에 "환영한다" 선언 필요했나

입력
2021.05.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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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마친 뒤 질의할 기자를 지정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마친 뒤 질의할 기자를 지정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에 크게 두 가지 조언을 던졌다. "2018년 북미 정상 간 싱가포르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며 싱가포르 합의 계승 필요성을 강조했고, "북미 간 양보와 보상을 동시적으로 주고받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비핵화" 등이다.

결과적으로 조언은 먹혔다. 백악관은 "트럼프식 일괄 타결(빅딜)도,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도 아닌 실용적 대북 외교(4월 30일)"라고 새 대북정책을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미 고위 당국자는 "싱가포르 합의 등을 기반으로 할 것"(워싱턴포스트)이라고 했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새 대북정책이 '외교'에 초점을 맞췄음을 강조하며 "북한이 기회를 잡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대북대화에 회의적일 것 같았던 바이든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 노선이 엇갈릴 것이란 그간 우려와 다른 결과가 나타난 셈이다.

그래서일까. 문 대통령은 "미국의 새 대북정책을 환영한다(취임 4주년 특별연설)"고 선언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직접 "환영한다"고 밝힌 것도 이례적이지만, "(미국의 새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기본 목표로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서 점진·실용적 접근으로 풀어나가겠다는 것"이라면서 친히 브리핑까지 해준 것도 생경했다.

들뜬 기분은 알겠지만 꼭 "환영한다"고 대내외에 선언했어야 했나. 동시·단계적 접근법을 드러낸 점에서 북한도 미국의 새 대북정책에 일단 관심을 둘 개연성은 물론 충분하다. 그렇다고 불과 2년 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라는 망신을 당했던 북한이 그저 '동시·단계적 협상'이니 이번엔 해볼 만하다고 결심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미국의 대화 제안을 걷어찰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럴 경우 "환영한다"고 했던 우리 정부 입장은 크게 면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 역시 향후 협상 과정에서 우리 바람과는 다른 대북 승부수, 예를 들면 대북 제재 강화 같은 조치를 추가로 내놓을 수도 있다. 그때 가서 "환영한다"던 입장을 회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섣불리 환영을 선언한 것은 앞으로 반복될 북미 간 엎치락뒤치락 협상 판에서 우리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힌 '악수'로 작용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 간 신뢰 구축' 즉 미국 대북 적대시정책 폐기가 북한이 취해야 할 '비핵화 조치'보다 앞에 배치됐다. 북한이 미국의 싱가포르 합의 이행을 바라는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제재를 먼저 해제할 것으로 내다볼 정황은 현재까지 없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실용적' 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이 실용성이 미국 입장에서의 실용인지, 북한 입장에서의 실용인지도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우리 정부도 이같은 함정이 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환영한다"고 공개 선언한 이유가 무엇인가. "남측이 보장할 테니 협상장으로 나와도 좋다"는 대북 메시지 치고는 턱없이 약하고, 백악관에 대한 고마움이라면 그 역시 순진하다. 그저 새 대북정책에 문 대통령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싶었나. 또는 한미 간 대북정책이 엇갈릴 것이라는 그간 우려를 향해 "당신들이 틀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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