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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늘려놓고 고교학점제? 내신 잘 받을 과목에만 쏠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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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늘려놓고 고교학점제? 내신 잘 받을 과목에만 쏠릴 것

입력
2021.05.14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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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월 17일 고교학점제 시범 운영중인 경기 구리시 갈매고등학교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교육부 제공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월 17일 고교학점제 시범 운영중인 경기 구리시 갈매고등학교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교육부 제공

“수능 잘 봐야 좋은 대학 들어가는데, 애들한테 소신껏 선택과목 들으라고 말하기 쉽지 않네요.”

13일 수도권 A학교의 교사 B씨가 내린 결론은 그래서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의 다양한 선택권을 존중하고, 미래 설계를 돕는다는 취지로 고교에서도 대학처럼 학점에 맞춰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2018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실제 운영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왔다.

진로가 비교적 뚜렷한 학생은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 학생에게는 더 복잡해진 입시제도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고, 선택 과목에 따라 내신 등급이 다 달라지기 때문에 손쉬운 과목에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란 지적이다. 더구나 '조국 사태' 때문에 대학수학능력(수능) 위주 정시선발 인원을 늘려놓은 상태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교사 업무

B교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A학교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 1년의 시간을 들였다. 학생들을 상대로 수요 조사를 하고 과목을 새로 만들고 과목에 맞는 강사를 구했다. 이 모든 과정에다, 수업이 비는 학생들을 모아 자습시킬 교실과 감독 교사 순서까지 준비해야 했다. 한마디로 교사들이 처리해야 할 '가욋일'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래도 학생들이 다양한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했건만, 현실은 달랐다. 막상 과목을 고르게 하자 수요조사 때와 달리 학생 대다수는 ‘수능에 들어가는 익숙한 과목’을 골랐다. 선택과목 책자도 만들고, 설명회를 열어 열심히 설득을 해봐도 요지부동이었다.

"소신파 학생은 내신 불리할 수도"

제 나름의 꿈과 진로를 감안해 듣고 싶은 과목을 고르는 '소신파'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성적을 처리해야 할 학기말이 되자 B교사는 '못할 짓을 한 게 아닌가' 고민에 빠졌다. 과목 신청자가 적으니 상위 등급을 주기도 어렵다. B교사는 “학생 수가 차라리 1명이라면 1등급을 줄 수 있지만, 최상위 동점자가 2명이면 둘 다 2등급을 받는다”면서 “소신대로 과목을 고르라고 권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여기에다 조국 전 장관 사건 이후, 대입제도가 수능이 중요한 정시 위주로 바뀌었다. 다양한 과목이란 대개 수능과 거리가 더 먼 과목들이어서다. B교사는 “상위권 대학, 특히 자연계는 수학 미적분 같은 특정 영역을 수능 필수 선택으로 지정하는데, 이런 과목을 제외하면 학생들 대부분은 내신 잘 받을 과목에 몰린다"며 "수능 선택과목이 표준점수 눈치싸움이 됐듯, 내신도 그렇게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사 81% "고교학점제 시기상조"

전국중등교사노조, 인천교사노조가 고교학점제 연구?시범학교 교사 2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81.4%가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반대한다"고 결론낸 이유도 여기 있다.

이런 현상은 직업계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부터 고교학점제를 시작한 서울 한 직업계고의 C교장은 “기본 교육과정을 따라가기도 바쁜 데다, 기업체가 선호하는 이수 과목이 있어 학생들이 추가 개설한 선택과목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면서 “할 수 없이 부전공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유사한 선택과목들을 묶어 학생들에게 패키지로 권장하면서 신청자가 조금씩 늘었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에 어울리는 대입제도 내놔야"

이 때문에 교육전문가들은 고교학점제에 맞는 대입, 수능 형태를 교육부가 구체적으로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육부는 올해 10월까지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 맞춘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하고, 내년 하반기까지 개정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을 확정해 고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입에 대해서는 ‘대입 4년 예고제’에 따라 2024년 2월까지 개편 방안을 발표하겠다고만 밝혀둔 상황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대학의 인재 선발 자율성을 인정해주고 다양성 속에서 공정성을 찾아야 한다”며 “최소한 수능 최저등급을 완화하거나 수시에는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지 않아야 고교학점제를 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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