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내 트럼프 반대 리더로 입지 굳혀
내년 중간선거에서 입김 더 커질 수도
“정치적 존재감은 외려 더 커졌다.”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이 미국 보수진영의 반(反)트럼프 구심점으로 급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사기’ 주장을 줄곧 비판하다 미운털이 박혀 당 지도부에서 퇴출됐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합리적 보수의 리더로 우뚝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체니 의원은 12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비판했단 이유로 공화당 하원 의원총회 의장직을 잃었다. 하원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요직이다.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을 이끈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자 전통 보수주의자로서 그는 1월 트럼프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선거 사기 주장이 불거질 때마다 가열차게 비판했다. 가장 최근인 5일 일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도 “공화당은 위험하고 반민주적인 트럼프 숭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의 영향력이 절실한 지도부 입장에선 이런 체니가 당연히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트럼프 열성 지지자인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체니가 당의 분열을 조장한다며 가차없이 내쳤다.
고위직에서 쫓겨나면 위축될 법도 하지만 체니는 거침이 없다. 그는 지도부에서 물러난 직후 “당을 구하는 리더가 돼 트럼프가 다시는 백악관 집무실로 돌아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당 리더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 체니에게 반드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봤다. 올 곧은 쓴소리는 정치인으로서 신념을 증명하고, 보수진영 내 트럼프 반대파와 중도층에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외연 확장의 기회라는 것이다. 당 지도부 출신인 패트릭 맥헨리 노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은 “체니의 낙마는 그의 위상과 지위를 높여줄 것”이라고 단언했다.
선거공학 측면에서 공화당은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체니를 버렸지만, 그의 존재가 오히려 당을 살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NYT는 “트럼프가 핵심 당원들에게는 사랑 받지만 다수의 대중이 그를 혐오하고 있다는 게 공화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된 NBC방송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 비율은 32%에 그쳤다. 55%는 트럼프를 싫어했고, 지지자 중에서도 무당층 비율(14%)은 크게 떨어졌다. 열혈 지지층 만으론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중도 표심 공략을 위해선 체니의 역할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걸림돌은 정작 자신이다. 와이오밍주(州)를 지역구로 둔 체니도 중간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는데, 경선 과정에서부터 극심한 견제가 예상된다. CNN방송은 “당내 트럼프 추종 세력이 워낙 많아 체니가 후보로 확정되기 전까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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