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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위기 부른 문파들의 빗나간 지지

입력
2021.05.12 18:50
수정
2021.05.12 19:1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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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문자폭탄 '양념'이라며 옹호
지지자들은 감시자와 이견 축출 앞장
대통령과 지지자들 서로 '감시' 했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을 정복한 뒤 동고동락한 페르시아 용사들을 모아놓고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한다. “제국을 얻는 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더욱 위대한 일입니다. 승리는 용기만 있는 자에게도 가끔 주어지지만, 승리를 쟁취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은 절제와 인내, 그리고 엄청난 주의를 실천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부하들이 승리에 안주해 나태해지거나 타락할 가능성을 경계하며 용기와 절제의 덕을 더욱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이다. 연설 말미에 이런 놀라운 말도 남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리에서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지 감시하고, 나 또한 여러분을 감시할 것입니다."

이는 BC 4세기 아테네 역사가 크세노폰이 ‘키로파에디아’(Cyropaedia?키루스의 교육이란 뜻)에서 전하는 얘기다. 정권 창출보다 정권 유지가 더욱 어려운, 그러므로 더욱 위대한 일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금언(金言)이다. 불행하게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 세력들은 정권을 잡는 데는 탁월했으나 정권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모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도 어김없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일 텐데, 문재인 대통령과 극성스러운 지지자들 간의 일그러진 관계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충직한 지지자들을 향해 초심을 잃지 말자며 ‘여러분이 나를 감시하고, 나도 여러분을 감시하겠다’는 2,500여 년 전의 언명이 동시대적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지자들이 문 정부의 성공을 원했다면 정권 핵심 인사들의 비위를 엄중히 감시해야 했건만, 되레 감시 역할에 충실한 이들을 쫓아내는 데 앞장섰다. 문자폭탄으로 이견을 일소해 혁신의 동력도 스스로 끊었다. 정권의 부패를 막고 지지 토양을 넓히는 것이 정권 성공의 요체지만 정반대로 정권을 왜소화하고 그 실책을 더욱 곪게 만드는 길로 내달린 것이다.

집권 초부터 “이니 마음대로 해”라며 맹목적 지지를 선언했던 이들의 정서가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 못 할 바는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후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나돌았다. 그가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지지자 연설에서 “여러분은 제가 대통령 되고 나면 뭐하죠”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시 객석에서 “감시”라는 함성이 나오자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저를 지켜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순진하게 “감시”를 외치다가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에피소드로 퍼져 지지자들의 자책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의 정확한 답변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감시”라는 외침이 나오자 “여러분 말고도 흔들 사람 꽉 있습니다”라는 특유의 농담을 던진 후 “(저에 대해) 감시도 하고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 좀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2002년 노사모는 분명 건강했다. 노무현 역시 지지자들의 ‘감시’를 부정하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지위마저 흔들리던 소수 세력으로서의 어려움과 절박감이 반영됐을 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당시의 정치 환경은 그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야권은 궤멸됐고 국민 80%가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정권의 주축인 86세대 역시 더는 비주류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이는 문 대통령이었다. 지지자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그 역시 지지자들을 감시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이른바 ‘문파’들의 빗나간 지지 행태에 대해 단 한 번도 일침을 놓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실패는 2017년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을 ‘양념’이라고 옹호한 데서 예고됐던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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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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