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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말, '너를 떠나지 않아'

입력
2021.05.12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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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 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지혜 문헌 전도서가 하는 말이다. 친구가 별로 없거나 늘 외톨이인 사람이 들으면 마음 시릴 말이 뒤를 잇는다.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상상만 해도 춥다. 가뜩이나 스산한데 솔로의 염장을 지르는 말이 또 이어진다.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4:9-11).

사람이 곤경에 처해 보면, 내가 그리고 내 주변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어렵다고 멀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곁에 남아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곁에 남은 사람이 없다면 난 인생을 잘 못 산 것일까?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지혜 문헌 잠언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재물은 친구를 많이 모으나, 궁핍하면 친구도 떠난다. 가난하면 친척도 그를 싫어하는데, 하물며 친구가 그를 멀리하지 않겠느냐?”(19:4, 7) 너무 적나라해서 마음이 쓰릴 정도다. 친구를 잃는 자기도 돌아봐야겠지만, 누가 진짜 친구인지도 알 수 있는 유익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보아도 내가 잘못한 것이고 내가 인간관계가 좋지 못하여 곁에 아무도 없다면, 이건 그야말로 치명타다. 인생을 잘 못 산 패배자며 이웃을 열 받게 만든 밉상인 것이다. 마침 성경에 그런 밉상이 하나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야곱이다.

야곱은 누가 보아도 비호감이다. 남자답지 못한 마마보이에 남을 이겨 먹으려고 늘 잔머리를 굴린다. 날 때부터 유명했다. 쌍둥이 형이 있는데, 엄마 배에서 나올 때부터 지지 않으려고 먼저 나가는 형의 뒤꿈치를 붙잡았다고 한다. 커서는 형의 장자권을 뺏기 위해 정말 짜증나는 짓을 했다. 사냥하고 돌아와 출출한 형 앞에 맛있는 팥죽을 끓여놓고는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더 어이없는 건 그 형도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장자권을 팔아버린다. 시간이 흘러 당시의 관습을 따라 아버지의 임종 전 축복을 받으려고 야곱은 또 한번 머리를 굴린다. 아버지가 연로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자, 자기가 마치 형인 것처럼 속이고서는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채 버렸다. 잔머리를 지나 큰머리를 굴렸다. 더 심각한 것은,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감히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당시 신앙적 세계관에 의하면 참람하기 그지없던 파렴치한 짓이었다.

분이 차오른 형은 급기야 야곱을 죽이려 했고, 자기를 죽이려는 형을 피해 그는 도망을 갔다. 늘 자기를 감싸주던 엄마도 없이 평생 처음으로 노숙을 했다. 찬 공기를 막아주는 천막도 없고 맨땅 위에 돌베개를 하고 누었다. 그러고는 환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다. 아마도 야곱은 하나님을 끌어들여 거짓말을 했던 죄악이 생각나 ‘이제는 죽었구나’ 했을 것이다. 너무 못되게 살아 친형에게 맞아 죽을 뻔한 자신을 돌아다보았을까? 그 누가 자기 같은 사람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에 많이 처량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말을 하나님으로부터 듣는다. 난 너를 떠나지 않아. 내가 함께 있을게. 어디로 가든지 널 지켜 줄 거야. 봐. 나중에 넌 다시 여기에 올 텐데, 그때까지 난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야. (창 28:15) 지난 2000년간 미움 받으며 살아가던 유대인들은 이 성경 구절이 자기네 복음이라고도 한다.

아무리 밉상이어도 어려울 때는 누군가 같이 있어 주면 좋겠다. 친구가 어려울 때면 더 어렵지 않도록 떠나지 않았으면. 친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멀리서 말고 곁에서 알려주길. 예수는 특별히 죄인을 부르려 오셨다.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먼저 가서 손을 내밀자. “난 너를 떠나지 않아.” 누군가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말이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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