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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외국어영화 분류 뭇매 맞더니... 골든글로브 존폐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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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외국어영화 분류 뭇매 맞더니... 골든글로브 존폐 기로

입력
2021.05.12 13:55
수정
2021.05.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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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NBC "개혁 미흡" 내년 중계 취소 등 잇단 악재

2019년 12월 제77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 후보작 발표 행사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튼 호텔무대에 트로피 모양 대형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2019년 12월 제77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 후보작 발표 행사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튼 호텔무대에 트로피 모양 대형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톰 크루즈는 트로피를 모두 반납했다. 주관 방송사는 시상식 중계 중단을 선언했다.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들은 행사 불참을 발표했다.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해 구설에 올랐던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다양성 부족과 불투명한 예산 집행으로 코너에 몰렸다. HFPA가 주최하는 내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78년 역사를 지닌 골든글로브상이 존폐 기로에 섰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데드라인에 따르면 크루즈는 예전 수상한 골든글로브상 트로피 3개를 반납했다. HFPA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크루즈는 ‘7월 4일생’(1989)과 ‘제리 맥과이어’(1996)로 골든글로브상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매그놀리아’(1999)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앞서 동료 배우 스칼릿 조핸슨은 “HFPA 내부에 성차별이 만연하다”며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마크 러팔로 역시 “영화로 수익을 올려온 HFPA가 배타성을 띠며 변화에 저항하는 것에 실망스럽다”며 비판에 동참했다.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가 2017년 5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영화 '미이라' 시사회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항의 표시로 골든글로브상 트로피 3개를 반납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가 2017년 5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영화 '미이라' 시사회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항의 표시로 골든글로브상 트로피 3개를 반납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①돈줄마저 끊길 위기

배우들의 항의로 명예만 실추한 게 아니다. 주요 수익원까지 사라지게 생겼다. NBC는 내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 중계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10일 발표했다. HFPA가 다양성 강화와 예산 부실 집행 방지를 위해 최근 마련한 개혁안이 당장 실효성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NBC는 올해까지 25년째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을 중계하며 HFPA의 돈줄 역할을 해왔다. 이날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2018년 이후 NBC가 HFPA에 매년 지급해온 중계권료는 6,000만 달러(약 673억원)다. 버라이어티는 NBC 내부소식통을 인용해 NBC가 HFPA와의 완전한 결별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BC의 결정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와 넷플릭스, 아마존이 골든글로브상과 HFPA 관련 업무를 모두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나왔다. 수상 후보가 될 영화들을 내놓을 주요 스튜디오들이 행사 불참을 선언하면서 골든글로브상 중계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워너브러더스 등은 HFPA의 인종ㆍ성별 차별, 동성애 혐오 논란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HFPA의 개혁이 현실화됐다고 확신할 때까지 보이콧을 이어갈 방침이다.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지난달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선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지 못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지난달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선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지 못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②다양성 등 시대변화 인식 부족

HFPA와 골든글로브상의 위기는 변화한 시대상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HFPA는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을 앞두고 후보를 발표했다가 할리우드 안팎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재미동포 2세 정이삭 감독의 미국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한 점이 대표적이다. ‘미나리’는 외국어영화로 분류되며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됐다. 영어 대사가 50%를 넘지 않으면 외국어영화로 분류한다는 HFPA 내부 규정에 의한 조치지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지난해 골든글로브상은 중국계 미국 감독 룰루왕의 미국 영화 ‘페어웰’을 대사 대부분이 중국어라며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려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나리’ 등의 외국어영화 분류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은 영어 대사가 30% 가량 밖에 되지 않는데도 골든글로브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2006)은 영어 대사가 50%에 못 미치는 데도 골든글로브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HFPA에 대한 불만은 2월 시상식 직후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회원 87명 중 흑인은 한 명도 없고 여성 회원이 매우 적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다. 흑인 감독이 연출한 수작 ‘다 5 블러드’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 HFPA의 회원 구성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다양성이 부족한 소수 회원들이 협회와 골든글로브상을 좌지우지한다는 우려도 쏟아졌다. HFPA가 협회 회원에게 2019~2020년에만 200만 달러(22억2,000만원)를 지급했다는 미 일간 LA타임스 보도가 나오면서 HFPA를 향한 분노는 더욱 커졌다.

미국 영화 '미나리'는 한국어 대사가 50%를 넘는다는 이유로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로 분류돼 작품상 후보에선 배제됐다.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판씨네마 제공

미국 영화 '미나리'는 한국어 대사가 50%를 넘는다는 이유로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로 분류돼 작품상 후보에선 배제됐다.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판씨네마 제공


③미진한 개혁안에 보이콧 이어져

HFPA는 최근 내부 개혁안을 마련해 지난주 이사회 승인을 거쳤다. 개혁안에는 유색인 회원 수 증원과 더불어 전체 회원 수를 50% 늘리겠다는 방침과 회원에게 제공하는 선물을 구체적으로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HFPA는 개혁안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더 난타를 당하고 있다. 스튜디오와 배우들의 보이콧 선언은 개혁안이 나온 후 이어졌다. 개혁안이 형식적인 측면에 그쳤다는 이유에서다.

NBC는 개혁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 사항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회원 수를 2배 이상 늘려 기존 회원의 성향을 넘어설 수 있어야만 납득할 만한 개혁안이라는 것이다. NBC는 HFPA가 개혁안을 실현할 구체적인 일정을 설정하지 않았고, 회원들의 지향점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 점도 문제로 보고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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