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장애 빨리 알았더라도..." 골든타임 놓치는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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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장애 빨리 알았더라도..." 골든타임 놓치는 부모들 

입력
2021.05.18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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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료: 하루라도 더 빨리
영·유아기에 장애 속히 대처 '조기 중재' 중요해도
치료비 부담과 정보 부족에 때 놓치는 일 다반사
"정부가 발달단계별 정보·치료연계 체제 구축을"

편집자주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의젓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 건 가족의 안간힘이다. 국내 장애인 규모가 등록된 인원만 해도 262만 명이니, 이들을 돌보는 가족은 못해도 1,000만 명을 헤아릴 터이다. 장애인 가족의 짐을 속히 덜어주는 것만큼 시급한 국가적 과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희망(가명)군이 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던 희망군은 산소줄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조기에 치료한 덕에 지금은 산소줄 없이 생활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아이 장애를 조금 더 일찍 알아채고 집중치료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일곱 살 이지현(가명)군의 아버지 이민수(43·가명)씨는 파트타임 목사다. 서울에서 전임목사로 일하던 이씨가 경기 양평군으로 이사를 오고 주말에만 사역하고 있는 건 아들을 위해서다. 지현이는 네 살 때인 2018년 자폐성 발달장애 2급 진단을 받았다.

지현이가 세 살 때쯤만 해도 이씨는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이 늦고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듯했지만 '나중에 입이 터지는 애들이 있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떠냐"는 조언을 들었다.

병원 두 곳에서 검사를 진행한 뒤 지현이는 장애 판정을 받았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다만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3분 정도 숨을 쉬지 않았는데 그때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이씨는 자식의 장애를 빨리 알아채지 못했던 그 시간이 야속하다. 그는 "아이가 치료를 받으면서 나아지는 걸 보니 조기에 집중치료를 했다면 효과가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대도 후회 없을 만큼 충분한 재활 치료를 할 수 있었을까? 이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조기 대응 중요한데… 발목 잡는 '돈'

유형을 막론하고 장애가 있는 영·유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조치는 장애를 최대한 빨리 진단해 대응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시행되는 영·유아 검진의 주요 목적이기도 하다. 영·유아기는 신체, 언어, 인지, 사회성 등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생애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때인 만큼, 이 시기 장애아에겐 발달 단계에 맞춘 치료와 교육이 중요한데 전문가들은 이를 '조기 중재(early intervention)'라고 부른다. 장애인의 삶을 최대한 정상 궤도로 올리기 위한 '골든 타임'이 영·유아기에 있는 셈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2019년 발간한 연구보고서에서 "조기 중재는 장애 위험 요인을 제거해 아동의 장애 심화와 2차 장애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늦기 전에 지켜주세요'라는 장애 영·유아 지원 캠페인을 진행하는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도 "장애 원인을 조기 진단하면 장애 부위 및 질환에 따른 맞춤형 진료를 시작해 장애 진전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아동 스스로 최소한의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증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대한 치료 비용이 조기 중재에 뛰어든 부모의 발목을 잡는다. 보통 영·유아들은 복지관이나 사설 특수교육 센터에서 △언어 △청능 △미술치료 등 다양한 종류의 재활치료를 받는데 수업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씨는 "다른 장애아 부모에게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수업을 받아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수업 한 시간에 5만 원씩만 쳐도 일주일에 100만원이 든다"며 "아들의 장애를 미리 알았더라도 당시 형편으로 집중치료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발달재활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중위소득 180% 이하 가정은 장애아동 재활 비용으로 매월 최소 4만원, 최대 22만원을 받는다. 가장 많이 받는 경우라도 일주일에 5만 원 남짓한 수준이라 자비로 부담해야 할 몫이 크다. 중위소득 50% 이하 가정이라면 월 최대 20만 원의 장애수당을 추가로 받겠지만 역시 치료에 전념하기엔 부족한 액수다.

박주연양과 할머니 김채경씨. 밀알복지재단 제공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손녀 박주연(7)양을 맡아 키우는 김채경(50)씨 부부는 파산신청을 해야 했다. 주연양은 생후 100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미세결실증후군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염색체 이상으로 심장, 얼굴 등에 기형이 나타나는 병이다. 주연이는 여전히 '엄마'라는 말밖에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한 치료를 받은 덕분에 걸을 수 있고 일정 수준의 판단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할아버지 월급 150만 원과 할머니의 아르바이트 수입으로는 매달 60만 원씩 드는 손녀의 치료비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산신청까지 한 사연이 언론에 알려져 후원금을 받은 덕에 급한 불은 껐지만, 김씨는 여전히 남편과 맞벌이하며 주연이의 치료비와 양육비를 벌고 있다. 김씨는 "아이 치료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계속 벌어서 비용을 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어떻게 키워야 하나" 눈앞이 캄캄

비용 문제만큼이나 장애아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정보 부재다.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 충격 이상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혼돈스러웠던 건 부모들의 공통적 경험이다.

김희망(가명)군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중증희귀난치성 호흡기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판정받은 김희망(14·가명)군의 아버지 김모(63)씨는 아이의 질병 치료부터 재활까지 필요한 정보를 찾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아이가 앓는 병부터가 국내 의료계에 생소했다. 그래서 아이가 다른 신생아보다 훨씬 작은 폐를 갖고 태어난 직후부터 '얼마 살지 못할 것'이란 진단을 줄곧 듣다가 바뀐 의료진으로부터 '치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야말로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느낌이었다. 김씨는 "아이를 위해 의료진을 찾는 것부터 일상생활 중 사용할 산소통을 빌리는 것까지 모두 알아서 해야 했다"며 "지금은 노하우가 쌓였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올해 중학생이 된 희망이는 수영도 하고 대화도 제법 통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9년 장애 영·유아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 진단 후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장애아 부모들과의 교류'(32.7%)와 '인터넷 카페'(19.1%)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아이가 장애 진단 후 치료나 조기 교육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개별 맞춤 정보가 부족해서(31%)'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장애에 대한 정보 부족이 초래하는 결과는 때로 심각하다. 아이가 명확한 장애 판정이 아닌 장애위험군 판정을 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부모의 인식 부족과 심리적 거부감이 겹치면서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일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다가 조기 중재 시기를 놓치는 일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장애 영·유아 부모는 잘 정리된 육아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보니 비슷한 처지의 다른 부모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장애 영·유아의 생애주기에 맞춰 정보를 제공하고 치료를 연계할 수 있는 종합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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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힘겨운 장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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