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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고해성사' 딜레마

입력
2021.05.1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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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동창들이 본 ‘배짱’ ‘카리스마’의 윤석열
“적폐 수사 고해성사하라”는 강경 보수
정치 진입 앞두고 정체성 시험대 올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 기간에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주민센터에서 투표를 하는 모습. 윤 전 총장은 이후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 기간에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주민센터에서 투표를 하는 모습. 윤 전 총장은 이후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동창들이 최근 낸 책을 보면 그의 성격이나 품성이 대강 감이 잡힌다. 미화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의 학창 시절 편린들을 유추할 때 직설적이고 고집이 세고 보스 기질이 있으며, 나름대로 정의감이 있어 보인다. 이런 성정은 그의 오랜 검사 시절 행적에서 나타나는 느낌과 대체로 일치한다.

윤 전 총장이 대중에게 각인된 계기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 때다. 당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관의 수사 중단 압력을 폭로한 건 거의 본능적인 게 아닌가 싶다. “그 일로 평생 쌓은 인맥 중 반 이상이 등을 돌렸다”고 그는 지인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유배 끝에 맡은 박근혜ㆍ이명박 적폐 청산 수사는 무너진 헌법적 가치를 세운다는 사명감에서였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휘두른 것도 그의 시각에선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행동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런 ‘윤석열식 정의’는 제대로 작동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진영 대립이 강고한 환경이 그렇고, 여기에 ‘정치 검찰’의 원죄가 얽혀 있다. 검찰의 어떤 정치 관련 수사도 좌우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이다. 박 전 대통령 등 적폐 수사를 할 때는 환호를 보냈던 진보 진영이, 문재인 정권 관련 수사에 나서자 손가락질을 하는 게 현실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윤 전 총장에 대한 보수 진영의 지지도 따지고 보면 현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 아닌가.

윤 전 총장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런 논란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의 진실과 정의는 진영 갈등의 스펙트럼에 굴절되기 마련이다. 정치 지형의 어느 한편에 설 수밖에 없기에 맞닥뜨려지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정권에 관계없이 권력 비리를 단죄했던 그의 일관성은 왜곡되고 힘을 잃는다. 국민의힘에서 터져 나온 윤 전 총장에 대한 ‘고해성사’ 요구는 그 난감함을 들춰낸다.

윤 전 총장은 보수 세력이 제기한 이 원초적인 의구심에 뭐라고 답할 건가. 그들은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구속시킨 공로로 문 대통령에 발탁됐다가 갈라선 입장에 대해 묻고 있다. “박근혜, 이명박 구속은 불법과 비리에 대한 정당한 조치였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현 정권의 의도에 맞춘 부실하고 부당한 수사였다”고 사과할 것인가.

물론 그로서는 얼마든지 곤경을 피해갈 답이 있다. “현행 사법체계에서 검사로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고 “수사 과정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겐 죄송하다”고 하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지지자들에게는 반문(反文)의 상징이 된 그가 어떤 답을 내놓든 달라질 건 없다. 보수 진영 입성을 위한 통과의례로 보는 시각이 다수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그럴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희생과 헌신이 따르고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이전에 언급한 바 있다. 그가 대중에게 갈채받는 가장 큰 요소는 원칙과 용기다. ‘적폐 수사’는 인생의 거의 전부를 쏟아부은 검사 윤석열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다. 원칙과 소신을 버리면서까지 신기루 같은 대권을 좇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윤 전 총장은 2001년 조직의 현실에 회의를 느껴 검찰을 떠난 적이 있다.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왔는데 그의 복귀를 종용한 이가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인 이명재 전 총장이다. 윤 전 총장은 사석에서 “가장 존경했던 총장이자 나를 많이 예뻐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사는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 태산같이 의연하되 누운 풀처럼 겸손하라”고 했던 이 전 총장의 당부를 윤석열은 기억할 것이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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