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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으면 우리 아들 어떡해" 눈 못 감는 부모들

입력
2021.05.17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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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봄: 아이보다 하루만 더?
근감소증 앓는 아들 둔 아흔셋 노모
아들 장애 등급 인정 안 돼 홀로 간병
간질 딸 돌보는 어머니 "죽음 생각도"
실제 극단적 선택 사례 끊이지 않아

편집자주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의젓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 건 가족의 안간힘이다. 국내 장애인 규모가 등록된 인원만 해도 262만 명이니, 이들을 돌보는 가족은 못해도 1,000만 명을 헤아릴 터이다. 장애인 가족의 짐을 속히 덜어주는 것만큼 시급한 국가적 과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 동작구에 거주하는 권복순(93)씨가 어린이날인 5일 거처에서 근감소증을 앓고 있는 이기형(61)씨를 돌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서울시 동작구에 거주하는 권복순(93)씨가 어린이날인 5일 거처에서 근감소증을 앓고 있는 이기형(61)씨를 돌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오늘 점심은 잔치국수다. 아들이 어렸을 때처럼 직접 멸치 육수를 내고 고명까지 얹으면 좋겠지만 맘 같지 않다. 국수를 삶는 것만도 요즘엔 기력이 부친다. 인스턴트 멸치국수 포장을 뜯으며 ‘세상 참 좋아져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서야 김을 뿜는 주전자를 겨우 들어 올렸다. 쏟을세라 조심스레 끓인 물을 붓자 뭉쳐진 면발이 스르르 풀린다.

인스턴트 멸치국수지만 쟁반에 받쳐들고 안방 침대에 누운 아들에게로 비치적비치적 걸어간다. 내 몸무게의 두 배는 될 아들을 안아서 세울 힘은 없다. 되는대로 옷자락을 잡아끌어 벽에 기대 앉혔다. 몇 가닥씩 젓가락으로 국수를 건져 입에 대주자, 아들은 간신히 입만 오물거려 받아먹었다.

국수를 다 먹이는 데 30분. 이제 내가 먹을 국수를 끓이자니 진이 빠진다. 주전자를 기울이다 그만 뜨거운 물을 오른손에 그대로 부어버렸다. 데인 데가 쓰라려 신음 소리가 새 나오려는 걸 입을 앙다물어 참았다. 눈에 들어오는 대로 참기름을 덜어 덴 손에 펴 발랐다. 어차피 약 발라 줄 사람도, 붕대를 감아줄 사람도 없다. 내가 다친 줄도 모르고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는 아들에게 상처를 보여주기도 싫다. 사는 날까지는 아들에게 내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다.

하루아침에 장애인 된 아들... 아흔셋 노모가 돌봐

지난 5일 권복순(93)씨와 아들 이기형(61)씨가 사는 서울 동작구의 한 다세대주택을 찾았을 때 모자는 마침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기자와 동행한 김재영 사회복지사가 현관 철문을 여러 번 두드리며 큰 소리로 ‘할머니’를 대여섯 번 외친 뒤에야 권씨는 인기척을 느끼고 지팡이에 의지해 나왔다.

대여섯 평 남짓한 작은 셋방의 벽지들은 이들 모자의 지난 시간을 말해주는 듯 누렇게 색이 바래있었다. 방 한편엔 생활용품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세탁기 안에는 미처 널지 못한 젖은 빨래가 쉬고 있었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에겐 거동이 힘든 60대 아들을 돌보는 데도 하루가 모자라다.

아들 이씨는 2년여 전 근육이 급격히 감소하는 ‘근감소증’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날이 갈수록 몸 상태가 안 좋아져 요즘은 대부분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낸다. 몸을 살짝 돌려 눕는 것도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쓸 수 있는 근육이 줄다 못해 이제 남은 부위는 눈꺼풀과 입술 정도다. "아무것도 못 해. 이제는 말도 제대로 못 해." 권씨는 아들을 바라보며 연신 중얼거렸다.

이씨는 타고난 강골이었다고 한다. 20대이던 1984년 브라질로 건너가 옷 공장을 운영하며 함께 온 어머니와 두 누나를 건사했다. 한국을 오갈 때면 이민 가방 3개 정도는 너끈히 챙길 정도로 힘도 좋았다. 2010년 고국에서 여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팔순 노모의 뜻을 따라 사업을 정리하고 함께 귀국했을 만큼 효심도 깊었다.

하지만 이씨가 당뇨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권씨 모자의 삶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이씨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병원에서는 근감소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지만, 발병 원인도 치료법도 찾을 수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거의 사라져 바짝 말라버린 이씨는 이제 어머니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장애 인정 안 되자... 아들 앞으로 요양사 돌렸다

권씨가 아들을 홀로 돌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권씨는 "아들의 장애 등급이 인정돼 아들 앞으로 요양사 한 명만 나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권씨가 아들을 홀로 돌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권씨는 "아들의 장애 등급이 인정돼 아들 앞으로 요양사 한 명만 나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이씨는 누가 봐도 장애인이지만, 우리 복지제도는 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근감소증이라는 병명이 장애등급 기준에 포함돼 있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3년 동안 장애등록 진단ㆍ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횟수만 100번을 넘지만 의사들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고 한다.

이제는 병원 가는 일도 쉽지 않아졌다. 어머니 권씨마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이씨를 병원에 데리고 갈 사람이 없어진 탓이다. 고령으로 장기요양보호 대상자인 권씨는 결국 자신을 돕던 요양보호사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꿨다. “나는 됐으니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다.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바뀐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자기 몸무게의 2배 가까이 되는 아들을 씻기고 돌보는 일은 여전히 권씨 몫이다. 권씨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도 이씨 치료비와 병원을 오갈 때 드는 택시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권씨는 "아들이 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나는 아파서도 안 된다"며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한시도 쉬지 않았다.

권씨는 “내가 눈감기 전까지 아들 전담 요양사가 생기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라고 했다. 살 날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조급하다. 아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지만, 구순이 넘긴 나이에 기대할 일이 못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권씨는 뜨거운 물에 덴 손바닥을 문지르며 말했다. "사실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어. 늙고 힘이 없는데 저 애 삼시세끼를 해줄 생각만 하면 앞이 아득해지거든. 저런 애를 혼자 두면 죽으라는 소리지. 굶어서 죽든, 목 말라서 죽든. 아들 앞으로 (요양사) 한 명만 와 주면 적어도 살아남지 않겠어? 나 죽고 나면 그땐 우리 아들 어떡하지."

언제 발작할지 모르는 딸 곁엔 엄마만 남았다

숱한 복지제도가 있음에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장애인 자녀를 홀로 돌봐야 하는 건 비단 권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뇌졸중으로 간헐적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이모(29)씨도 어머니 유모(59)씨가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씨가 집에 혼자 있다가 발작을 일으켜 위급한 상황에 처했던 일이 있은 후 유씨는 한시도 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유씨는 "3년째 매일 딸이 침대에서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확인하며 노심초사한다"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이가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살펴볼 정도"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씨는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매월 1회 이상의 중증 발작이 있거나 경증 발작을 포함해 연 3회 이상의 발작이 있어야 최저 등급인 5급을 인정받을 수 있는 현행 장애인등급 제도의 한계 탓이다. 이씨의 경우 의무 기록상 객관적으로 증명되는 간질 발작은 연 2회다. 가벼운 발작이 더 있었지만 병원을 찾지 않아 인정되지 않았다. 유씨는 "장애로 장애인과 가족의 일상생활이 멈춰버리는 현실에 비해, 장애인 스스로 장애를 증명하도록 하는 지금의 판정 기준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정부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작으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모두 그만둔 모녀로서는 전 남편으로부터 다달이 받는 100여만 원가량의 양육비가 수입의 전부다. 기초생활수급자로도 인정받지 못해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 유씨는 "삼시세끼 중 아침 먹기를 포기하거나, 옷을 최대한 갈아입지 않는 등 사소한 생활비를 아끼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둘이서 살기가 힘들다"며 "솔직히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질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밝혔다.

삶의 가능성이 사라지자... 극단적 선택까지

장애인의 극단적 선택 비율. 송정근 기자

장애인의 극단적 선택 비율. 송정근 기자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장애인 돌봄이 사실상 가족에게 전가되다시피 하면서 장애인 가족이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건강 악화 등으로 자신이 더 이상 자녀를 돌볼 수 없게 될 경우 자녀의 자립을 돕기보다는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두증을 앓아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아들을 30년 가까이 헌신적으로 돌보던 아버지 김모씨. 김씨는 급성 백혈병으로 항암치료를 받더라도 생존확률이 매우 낮다는 진단을 받자 재작년 아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처벌을 받았다. 2013년에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30대 아들을 25년간 돌본 50대 아버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집에 불을 질러 함께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매일 4.6명의 장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 평균의 2.6배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 구제할 방법은 없었는지 등 사례 분석이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장애인 가족으로의 돌봄 전가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그만큼 낮다는 방증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집중된 돌봄 부담은 여러 비극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이는 개인과 가족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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