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잡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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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잡았나요?

입력
2021.05.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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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한국말에는 ‘감’이 있다. 이미 감 잡은 것처럼, 먹는 감이 아니라 느낌[感]에 대한 이야기다. ‘감이 좋다’, ‘감이 빠르다’의 ‘감’은 어감(語感), 음감(音感)뿐만 아니라 길이감, 무게감, 부피감 등으로 널리 쓰인다. 살면서 누구든지 한 번씩은 겪는바, 감이란 타고 나지 않은 이상, 배워서 익히기에는 참으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말맛이나 소리에 대한 감수성에 자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 잡았다’라 할 정도로 어떤 상황에 확신이 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뿐만이 아니다. 한국말에는 ‘눈치’도 있다. ‘눈치’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타난다면 ‘오늘 좋은 일이 있는 눈치’라고 말한다. ‘눈치가 참새 방앗간 찾기’ 정도가 되면 떡도 그저 생기는 것처럼 눈치란 상황에 근거를 둔 재빠른 감각이다. 이쯤 되면 눈치란 좋은 능력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언어생활을 돌아보면 ‘눈치’는 칭찬할 때보다는 ‘눈치가 보인다’, ‘눈치가 없다’ 등 곤란한 상황에서 더 많이 쓰인다. ‘눈치가 발바닥’이라는 혹평도 있다. 눈치 여부가 미치는 영향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신도 아닌 사람이 남의 마음을 상황만으로 짐작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한국말 ‘감’과 ‘눈치’는 곧 한국인의 감정 표현법이다.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힘든 말에 ‘삐치다’가 있다. 풀이하면 ‘성나거나 못마땅해서 마음이 토라지다’지만 이 말에 내포된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는 화가 날 때 말하지 않을 뿐더러 시험에 합격한 기쁜 순간에도 다른 이들이 곁에 있다면 크게 즐거워하지 않는다. 힘의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화를 참는 이유는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합격의 기쁨을 감추는 것은 탈락한 벗에 대한 배려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과연 말을 하지 않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감정 표현법은 원래 문화권별로 다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일 다 했으면 퇴근해’라 하고서도 ‘나 때는 말이야 …’를 이어간다면 판단력이 아니라 눈치 보는 사람들을 키우고야 만다. 전통 사회에서 살아온 방식은 여전히 개인과 사회의 곳곳에 삶의 흔적으로 남아 있겠지만, 사회 새내기들이 남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배우면서 인간관계의 감을 익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어른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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