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이 단종됐다니… 언제부터 수리하지 않고 사게 됐을까?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부품이 단종됐다니… 언제부터 수리하지 않고 사게 됐을까?

입력
2021.05.06 14:55
수정
2021.05.06 14:56
0 0

서울 성수동의 제로 웨이스트 숍 더 피커는 유통 과정에서 포장 쓰레기와 탄소 발생을 최소화한 제품을 판매한다. 친환경 곡류 및 견과류는 벌크로 진열해 원하는 만큼 무게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 김잔듸 촬영. 비타북스 제공


우리는 언제부터 망가진 물건을 수리하지 않게 됐을까? 언제부터 쓰던 물건을 버리고 신제품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을까?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국립독일박물관의 관장인 볼프강 M. 헤클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1920년대 스타일의 정장을 살펴보다 의문을 품었다. 옷에는 주인이 살이 빠졌다가 다시 살이 찌는 사이 여러 번 수선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언제라도 수선할 수 있도록 옷감과 안감을 넉넉하게 재단해 만들어진 옷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최신 유행이 시장에 쏟아지고, 소비자들이 이를 소비해내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시대에는 보기 드문 유물이다.


고치는 대신 사게 만드는 자본주의 질서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 상품을 사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구조가 정착돼 저항하기 힘들다. 헤클은 수영장 펌프를 고치려다 이 구조를 체감한다. 판매점이 제품이 오래돼 부품을 구할 수 없다고 응대한 것이다. 나사만 바꾸면 작동할 텐데 그걸 단종시켰다고? 대부분의 기업이 신제품을 생산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단종시킨다. 부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소비자의 찬사를 받을 정도다. 헤클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라디오는 한 번 사면 죽을 때까지 고쳐 쓰는 물건이었는데.

'리페어 컬처'. 볼프강 M. 헤클 지음ㆍ조연주 옮김ㆍ양철북 발행ㆍ252쪽ㆍ1만5,000원


버리고 사며 무기력해진다

버리고 사는 주기가 점차 빨라지면서 사람들은 무기력해진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물건들은 흐르는 물처럼 삶을 스쳐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떤 물건이든 척척 수리해내는 ‘금손’들에게는 찬사가 쏟아진다. 자신이 다루는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사람,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리페어 컬처(repair culture)는 이러한 세태를 바꾸려는 문화이자 운동이다. 직접 만지고 고치며 살아가는 활동이다. 무엇이든 수선하는 사람은 그 사물과 씨름하며 세상을 이해해 나간다. 그것은 지속성을 경험하게 하고,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며,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자신을 의미 있게 연결해준다. 동시에 사물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경험하고 발견해내도록 유도한다. 뭔가를 고치거나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자율성을 얻는다. 해방감을 경험한다. 스스로 해낸 데서 자기 확신을 얻는다.

이러한 운동은 유럽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리페어 카페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공구와 재료를 구비한 카페에서 수리, 창작 활동이 펼쳐진다. 카페는 4년 만에 50여 개로 늘어났고 벨기에, 프랑스, 미국을 거쳐 독일로 퍼졌다. 리페어 컬처의 확산은 점점 늘어나는 쓰레기 더미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더 피커에서 판매하는 곡류는 다회용 용기에 담겨 판매된다. 친환경 곡류 및 견과류는 벌크로 진열해 원하는 만큼 무게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 김잔듸 촬영. 비타북스 제공



제로 웨이스트 도전, 실패가 성공

지구와 자신을 지키는 삶은 하루아침에 실현되지는 않는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의 대가는 1년에 항아리 하나를 채울 만큼만 쓰레기를 배출한다. 모든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살 수는 없다. 완벽한 활동가 한 명보다 꾸준히 실패하고 도전하는 실천가가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 깨끗해진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전은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도전을 부른다.

자신이 익숙한 영역에서 도전을 시작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강의하고 연구실로 돌아온 날, 깨달음을 얻었다. 믹스커피 한 봉지를 내리다가 그 행동이 방금 전 자신이 한 말과 완벽하게 모순된다는 점을 깨우쳤다. 커피는 돈이 되는 환금 작물이다. 하루에 25억 잔씩 소비되는 커피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적도 주변 열대 우림은 점차 커피농장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 열대림의 절반이 이미 사라졌고 매년 한반도 면적 크기의 열대우림이 사라진다. 30년 뒤면 열대우림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날의 커피가 공 교수 인생의 마지막 커피가 되었다.


'줄이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전민진 지음ㆍ김잔듸 사진ㆍ비타북스 발행ㆍ332쪽ㆍ1만4,800원



쓰레기 줄이다 사업 뛰어들기도

쓰레기 줄이기가 직업이 된 경우도 있다. 곽재원 트래쉬버스터즈 대표는 축제기획자다. 서울시가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자 곽 대표는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그게 사업이 됐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축제에 다회용 용기를 빌려주고 수거해 세척한다. 한 행사의 경우, 보통 300~400개씩 나오던 100리터 쓰레기봉투가 트래쉬버스터즈의 도움을 받고 6개로 줄었다. 축제에서는 일회용 쓰레기가 쏟아지기 마련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결과다.

서울 성수동에 자리 잡은 ‘더 피커’에서는 포장하지 않은 상태의 식재료를 판매한다. 곡류를 사겠다면 원하는 만큼 자신의 용기에 담아가면 된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일회용 컵 하나 안 쓴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그 물음에 더 피커를 운영하는 송경호 공동대표는 이렇게 답한다. “완벽히 제로가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분들도 많이 봤고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왔어요. 하지만 그냥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면 돼요. 좀 실패하면 어때요. 또 하면 되죠.”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에서는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농산물이 판매된다. 환경을 보호하는 소비를 장려한다. 김잔듸 촬영. 비타북스 제공


김민호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