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젊은 시절 가정을 일구며 정해진 삶의 방식이 어느 정도 정돈되는 시점에 다다르면 인생 2막을 준비하게 된다. 남자들은 직장에서 은퇴하는 시점이 그렇고 여성들은 아이들이 독립하는 시점이 보통 그러한 것 같다. 이러한 인생 2막의 시점이 되면 가정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한 만큼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오래전 해보고 싶었거나 좋아했던 일들을 소환해 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미운 정 고운 정 들었던 현재의 삶의 굴레로부터 살짝 벗어나 보는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현대 도시인에게 인생 2막이란 마치 갱년기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증상인 듯하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표가 상승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평생 수고해서 받게 되는 퇴직금이라는 목돈과 연금 등이 혜택으로 돌아오면서 이를 나의 인생 2막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준비한다. 그런 가운데 최근 60대 남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미디어 프로가 시골에서 혼자 사는 프로라는 말을 듣는다. 어쩌면 30여 년의 삶을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최선으로 살아오면서 너무도 힘들었던 과정에 대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반면 여성들은 자녀교육과 남편 뒷바라지, 집안 살림단속에 자기 시간을 갖지 못했던 아쉬움을 접고 새로운 준비를 시도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작가로 등단한다든지 시니어 모델에 도전해 보는 등 오랫동안 감추어 두었던 자신의 끼를 발산해 보려는 시도를 흔히 보게 된다.
인생 2막의 때가 되면 삶의 공간도 변화를 겪게 된다. 직장과 교육에 유리했던 도심 속 아파트의 삶에서 벗어나 새 삶에 적합한 문화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도심의 변두리를 엿보게 된다. 전원주택이나 세컨드 하우스 별장 주택을 고려해 보는 것이 이 시기에 주로 나타난다. 최근 지인이 노후 대비 이사할 집을 보러 가는 길에 함께 동행한 일이 있었다. 평생을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았던 가족이었기에 먼저 살펴본 곳은 아파트였다. 50, 60평대의 아파트들의 평균 매매가가 20억 원에서 30억 원 사이를 오고 가고 있었다. 서민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에겐 살짝 문화적인 충격이 있었다. 적잖은 집값이 그랬고 그 정도 금액에 매매가 일어날 만큼 좋은 집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월 관리비가 80만 원을 넘나드는 아파트의 내부 평면은 사실 동 전체가 똑같다. 재료나 디테일이 특별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아파트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점은 건물의 향과 높이에 따라 조금씩 뷰와 빛의 간섭이 다르다는 점뿐이었다. 내가 볼일을 보는 머리 위에서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이런 천편일률적인 삶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삶의 공간도 중독이 될 수 있다. 도시형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단독주택은 불편하다. 이유는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아파트는 편리하다. 모든 관리를 위탁에 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편리란 속도와 서비스를 얻을 수 있는 선택이다. 그것은 여유 없이 바쁜 도시인에게는 시의적절한 삶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독인 것이다. 공간과 삶의 방식은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중독된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 중독에서 잠시 벗어나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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