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권위에 약하거나 소통에 서툰 대학 구성원 타깃
대학 넘어 사회경험 적은 젊은층 상대 피싱범죄 증가
"반가워요, OOO 부총장입니다. 주변에 중국인 석박사 과정 학생 있나요?"
모두가 '불금'을 즐기고 있던 지난달 30일 오후 7시쯤 서울대 미대 소속 조교 A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자신을 서울대 부총장이라 소개한 이는 "공적 문서를 작성 중인데 중국어 번역이 필요하다"며 중국인 유학생을 소개시켜달라고 요청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교수의 연락에 A씨는 당황했지만,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상대가 밝힌 이름은 실제 현직 부총장 이름과 같았다. 무시할 수 없어 같은 과의 중국인 유학생 B씨를 소개했다.
'부총장'은 B씨에게 메시지를 보내 "중국어로 된 질의서 초안의 번역을 봐달라"고 하더니 추가로 부탁할 게 있다고 운을 뗐다. "중국 위안화 환전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B씨는 "위안화가 없다"며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교수는 "다른 연구실 조교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매달렸다.
수상함을 느낀 A씨와 B씨가 학과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확인해보니, 이들이 받은 메시지는 해당 교수를 사칭한 '메신저 피싱'이었다. 범인이 학교 홈페이지의 교수 사진을 캡처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걸고 교수인 척 돈을 요구한 것이었다. 학교 측은 추가 피해가 없는지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A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갑자기 교수가 부탁을 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며 "확인 전화를 수 차례 걸어도 받지 않아 의심이 갔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총장 등 교수를 사칭한 메신저 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료 교수나 직원이 주요 타깃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20, 30대 대학원생과 유학생을 노리는 방식으로 발전해 학생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교수를 사칭하고 학생에게 접근하는 피싱 범죄는 대학사회의 상하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특히 A, B씨 사례에서 보듯이 조교는 교수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기 힘든 처지이고 유학생 또한 의사소통이 서투르다 보니 범행 타깃이 되기 쉽다. 지난 3월 전북대에서는 중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전 총장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가 연이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수만 원에서 수백만 원 정도의 비교적 적은 금액을 요구하는 수법을 쓰다 보니 학생 입장에선 가벼이 여기다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젊은층을 노리는 피싱 범죄는 대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3만1,681명으로 이 중 20대 이하(5,323명)와 30대(4,406명)가 전체의 30.7%를 차지했다. 특히 20대 이하 피해자는 2019년 3,855명에서 38% 급증했다. 다른 연령대 피해자가 10~20%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수사기관 안팎에선 피싱 범죄의 주요 타깃이 60대 이상 노인 위주에서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층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 상급자를 사칭한 연락이 오면 대처법을 몰라 당황해하고 수동적으로 끌려가다 피해를 보는 경향이 크다"며 "젊은층에도 체계적인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이른바 '화이트가운 효과'를 들어 "권위를 내세워 불안감을 조성하면 누구나 판단력을 상실하고 비합리적 결정에 이를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화이트가운 효과란 의사의 하얀 가운처럼 권위를 드러내는 존재의 말을 쉽게 수긍하고 그에 따르려는 경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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