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풀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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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풀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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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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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공자는 자식에게는 스승 같았고 제자에게는 부모 같았다. ‘진항’이란 사람이, 보통의 선생들이 그러하듯, 공자 또한 어떤 특별한 것을 자식에게만 전수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은근히 탐문해 보니, 제자들을 대하는 평소 태도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진항은 기뻐하며 “군자는 자신의 아들과 제자를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안에서는 제자들에게 “직위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직위에 오를 능력이 있는지 걱정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남들이 알아줄 자기의 능력을 쌓아라(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고 질책했지만, 밖에 나가면 제자들 취직에 발 벗고 나서며 ‘과감하다’, ‘사리에 밝다’, ‘다재다능하다’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사람이 공자였다. 또한 애제자 안연의 죽음 앞에서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며 무너지기도 했던 스승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만 보고서 그때에는 다들 그랬으려니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이다. 살벌한 춘추전국시대, 부모가 자식을 위해 찾고자 했던 스승의 모습은 천양각색이다. 노나라의 권력자 맹손씨(孟孫氏) 집안에 음미할 만한 고사가 있다.

맹손이 사냥을 나가 새끼사슴을 잡았다. 가신인 진서파(秦西巴)에게 주면서 먼저 가서 사슴 요리를 하라고 시켰다. 진서파가 돌아가는데 새끼사슴의 어미가 따라오면서 계속 울었다. 차마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새끼를 풀어 놓아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맹손이 돌아와 새끼사슴을 찾자 진서파가 대답했다.

“어미사슴이 따라오며 계속 우는데 제가 차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독단으로 새끼를 풀어서 어미에게 돌려보냈습니다.”

맹손이 화가 나서 진서파를 내쫓아 버렸다. 그 후 일 년이 지나자 다시 불러들여 자식의 스승으로 삼았다. 주변 사람들이 말했다.

“진서파는 주군에게 죄를 지었는데 자제분의 스승으로 삼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손이 말했다. “한 마리 사슴조차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인 내 자식에게는 어떤 마음으로 대하겠는가!”

‘한비자(韓非子)’, ‘회남자(淮南子)’ 등 여러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서파가 사슴을 풀어주다(西巴釋麑)”, 또는 “사슴을 풀어주자 자식의 스승으로 삼다(釋麑子傅)”라는 성어가 여기서 생겼다.

살벌하고 잔혹한 세상, 맹손이 보기에 선생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내 아이의 안전과 생명을 그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권력자나 평범한 부모나 마찬가지인 법. 그래서인지 맹손의 걱정과 고심은 부모 된 입장에서 절절히 다가온다. 아이에게는 영어 수학 잘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자식을 맡긴 부모의 마음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 심성을 가진 ‘인간’이 필요하다.

요즘 어린이집이나 학원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아동 학대 사건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려면, ‘사슴을 풀어주는 사람’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판이다.

그런데 친부모를 비롯해 양부, 양모, 계부, 계모 등, 소위 ‘부모’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자들이 ‘자식’을 죽음으로 모는 사건 앞에서는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맹자의 ‘성선설’도 ‘측은지심’에서 인용한 어린아이에 대한 비유도 모두 허망하게 들린다. 우리말에 ‘인두겁’이라는 표현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현재 한국은 정치권과 사회의 방치 속에 인두겁을 쓴 자들이 아이들 주변을 맴돌고 있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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