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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안통하는 택시·매운 마라탕… "홍콩의 중국화,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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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안통하는 택시·매운 마라탕… "홍콩의 중국화, 안타깝죠"

입력
2021.05.03 16:50
수정
2021.05.06 11:4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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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람들은 쓰촨 음식처럼 매운 음식을 못 먹어요. 광둥요리를 주로 먹었죠. 그런데 이제는 거리에서 마라탕을 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중국 출신 여행객과 이민자들이 엄청나게 늘었으니까요. 그것은 한 가지 예입니다. 홍콩이 자유와 특색을 잃고 상하이나 선전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여행자들도 앞으로는 정치적 발언을 조심해야 할 겁니다.

여행작가 전명윤씨

홍콩의 유통기한은 끝났다고 여행작가 전명윤씨는 이야기한다. 1997년 홍콩이 중국의 품에 안겼을 때, 홍콩인들은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 약속을 지키리라 희망했다. 최소한 50년간은 영국식 체제를 유지할 줄 알았다. 그러나 중국은 21세기부터 홍콩의 내정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행정장관 직선제 무력화는 체제 통합의 신호탄이었다. 홍콩인들은 정체성을 빼앗길 처지에 놓였고 위기의식은 우산혁명(2014년)과 송환법 투쟁(2019년)으로 터져나왔다. 그러나 저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군중이 모이지 못하게 되자 허망하게 사그라들었다. 중국이 그 틈을 파고들어 지난해 7월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면서 항인치항(港人治港), 즉 홍콩인이 홍콩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씨는 홍콩은 이미 중국처럼 변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전씨는 지난 14년간 홍콩을 수없이 드나들며 여행가이드북을 써왔고 2014년과 2019년의 시위를 취재해 국내에 보도했다. 현지 운동권 세력과도 인연을 맺었다. 최근에는 홍콩의 격변기를 정리한 저서 '리멤버 홍콩'을 내놨다. 홍콩은 평생 한두 차례 들르는 여행객들은 눈치채기 어려운 사소한 것부터 변하고 있다. “중국 내지인들이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중국의 표준어인 푸퉁화를 쓰는 인구가 크게 늘었습니다. 택시를 타면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뿐만 아니라 중국이 탄압하는 파룬궁 시위대도 시내 주요 명소에서 사라졌습니다. 언론자유가 사라진 거죠.”

전명윤 작가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카페 에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 14년간 1년에 네다섯 차례씩, 길게는 두 달 가까이 홍콩에 머물며 현지인들을 취재했다. 2014년과 2019년의 대규모 시위 때는 현장에 직접 나가기도 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전명윤 작가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카페 에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 14년간 1년에 네다섯 차례씩, 길게는 두 달 가까이 홍콩에 머물며 현지인들을 취재했다. 2014년과 2019년의 대규모 시위 때는 현장에 직접 나가기도 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홍콩인들이 중국의 직접통치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특히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홍콩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는 이대로는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유까지 빼앗길 거라고 우려한다. 경기가 살아나도 과실은 홍콩인의 몫이 아닐 것이라고 절망한다. 홍콩 경제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홍콩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반환 당시 30%에서 최근 3%까지 추락했다. “2019년 시위에서 터져나온 구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감옥에 가는 것이 무섭지 않다. 감방이 0.8평이라고 하던데 지금 내가 사는 방이 0.8평보다 좁다!”

‘중국화’에 대한 반감은 홍콩 고유의 풍경을 고집하는 홍콩 민족주의자, 로컬리스트(localist)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홍콩만의 것을 해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시내 교통체증의 주범인 노면전차마저 보호대상이다. 2016년 발생한 피시볼 혁명(어묵 혁명)은 보건당국의 노점 단속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다이파이동이라 불리는 포장마차가 예전에는 2,000여 개 있었는데 최근에는 13개 정도로 줄었어요. 로컬리스트들에게는 큰 상처죠. 장국영이 즐겨 찾았던 가게를 포함해 유명한 식당들이 2019년 시위와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는데 그것도 로컬리스트에게는 중국 책임으로 보일 겁니다.”

우산혁명 당시인 2014년 10월 2일 오전 4시 홍콩 정부종합청사와 지하철 애드미럴역 앞에 모인 시위대. 홍콩=박일근 특파원

우산혁명 당시인 2014년 10월 2일 오전 4시 홍콩 정부종합청사와 지하철 애드미럴역 앞에 모인 시위대. 홍콩=박일근 특파원

변곡점은 2019년이었다. 시위대는 2014년 우산혁명에서는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를 요구했고 2019년 송환법 투쟁에서는 홍콩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법안의 입법을 거부했다. 전자가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행동이었다면 후자는 생명을 지키려는 저항이었다. 민주화 인사가 테러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으로 송환되는 사태를 막아야 했다. 그래서 관광업이 타격을 받자 바로 허물어졌던 우산혁명과 달리 송환법 투쟁은 8개월간이나 이어졌다. 코로나19가 유행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계속됐을 거라고 전씨는 설명했다.

“현지 활동가는 투쟁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젊은 세대의 절망감이 큰 것이죠. 우산혁명이 지도부의 자수로 끝났기 때문에 2019년에는 지도부 없이 시위하는 전략을 채택했는데 그게 독이 됐어요. 협상에 나설 지도부가 없었죠. 다른 나라였다면 이 정도로 상황이 진전됐을 때 정부가 물러섰겠지만 홍콩은 달랐어요. 권력을 홍콩 정부가 아닌 중국 정부가 가졌으니까요.”

2020년 5월 24일 홍콩 시내 중심가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펼쳐 보이고 있는 다섯 개 손가락과 한 개의 손가락은 "5대 요구 사항을 단 하나라도 빼지 말고 모두 이행하라"는 뜻이다. 시위대의 5대 요구는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 강경 진압 책임자 문책,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입장 전면 철회, 체포된 시위대 석방,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전씨는 2019년 처음 제시된 5대 요구를 홍콩이나 중국 정부가 단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5월 24일 홍콩 시내 중심가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펼쳐 보이고 있는 다섯 개 손가락과 한 개의 손가락은 "5대 요구 사항을 단 하나라도 빼지 말고 모두 이행하라"는 뜻이다. 시위대의 5대 요구는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 강경 진압 책임자 문책,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입장 전면 철회, 체포된 시위대 석방,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전씨는 2019년 처음 제시된 5대 요구를 홍콩이나 중국 정부가 단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그가 두 차례의 시위에서 만났던 젊은 세대가 자칫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중국 정부로부터 낙인이 찍혀 취업은 물론,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다. “중국 정부가 홍콩의 교육을 장악하려고 나서고 있죠.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시위를 경험한 10대, 20대와는 다르게 키우려는 의도입니다. 중국이라면 두 세대 전체를 사회에서 배제시켜 버릴지도 모릅니다.”

홍콩의 옛 모습을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전씨는 저항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당장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는 소비를 장려하는 ‘황색경제권 운동’이 자라나고 있다. “예를 들면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택시기사만 가입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현재 우버의 점유율을 60%까지 잠식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죠. 정치적 저항이 무의미해지니까 경제적으로라도 홍콩인만의 공동체를 뿌리내리려는 움직임입니다. 홍콩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 여행작가니까 여행가이드에다가 황색경제권에 속한 식당들을 소개해주면 안 되겠냐고요. 조만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전명윤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에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한진탁 인턴기자

전명윤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에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한진탁 인턴기자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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