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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가장 모순적 교황"

입력
2021.05.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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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모스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세기 최장수 교황으로서 사뭇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요한 바오로 2세. flickr 사진

20세기 최장수 교황으로서 사뭇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요한 바오로 2세. flickr 사진

2001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슬람 최고 사원 중 하나인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우마야드(Umayyad) 모스크에서 무슬림 지도자와 만나 함께 기도했다. 로마시대 주피터 신전이었다가 비잔틴시대 세례 요한교회였던 그 무슬림 사원은 '종교 간 대화'의 상징적 무대로 더 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교황은 "늘 서로를 공격해온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저마다 신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듯 서로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라며 "신이 우리의 죄를 사하였듯이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라고 예수님이 가르치셨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모스크에 든 최초의 교황이 됐고, 2년 전인 1999년 3월에는 이란 대통령을 만나 11세기 이후 최초로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 정상이 문명의 화해를 다짐하는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바오로 2세 교황은 만 27년을 재임하는 동안 정력적 활동으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가톨릭 교세 확장에 기여했고, 사후 시성됐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2차대전을 겪고, 폐허의 조국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한 그는 공산국가 출신 첫 교황으로서 반공주의를 신앙적 신념에 버금가는 원칙으로 삼으며 냉전의 한 축을 지탱했고 그 덕에 서방세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중남미 독재권력의 온갖 학정에 맞서던 해방신학자들을 공식적으로 단죄하고 수많은 사제와 신학자들을 '신앙교리성' 심판대에 세웠다.

1978년 교황이 된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이어받겠다며, 공의회를 시작한 '요한 23세'와 마무리한 교황 '바오로 6세'의 이름을 받아 '요한 바오로 2세'란 이름을 취했다. 세계종교와의 대화도 공의회 정신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 핵심인 '개혁'과는 사뭇 동떨어진 행보로 일관하며, 피임 낙태 이혼 동성애를 불경 행위로 규정했고, 여성사제 서품과 사제 결혼도 교서로 거부했고, 1983년 교회법(요한바오로법전)을 개정해 교황(청)의 독점적 권한을 강화하고, 1992년 교리서(교황령 '신앙의 유산)'를 발간해 자유신학적 교리에 재갈을 물렸다. 진보 신학자 한스 큉은 그를 "20세기의 가장 모순되는 교황"이라고 평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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