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서 강한거야" 식물 책의 위로, 인생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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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서 강한거야" 식물 책의 위로, 인생을 배우다

입력
2021.05.02 15:33
수정
2021.05.0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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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 초록빛으로 물들인 식물 에세이들

수국은 하나의 개체에서 푸른꽃, 붉은꽃, 하얀꽃 등 세 가지 색의 꽃을 피워낸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흡수한 물의 산도에 따라 꽃잎 색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 작가. 김영사 제공

라일락의 그윽한 향기, 이팝나무의 하얀 꽃가루, 수국의 파스텔빛 꽃잎이 말을 걸어오는 5월. 서점가도 싱그러운 식물 에세이로 짙게 물들고 있다. ‘식물학자의 노트’(김영사), ‘식물의 시간’(오월의봄), ‘전략가, 잡초’(더숲), '식물이라는 우주'(시공사) ‘정원의 쓸모’(윌북) 등 제목에서부터 상쾌한 풀 내음 가득한 책들이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쑥쑥 성장 중인 식물 책, 교양서로 진화

2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출간된 식물 에세이(식물, 정원, 숲, 나무, 자연 등 키워드로 추출)는 총 24권. 2019년과 2020년 17권이었던 데 비해 7권이나 늘었고,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34.3%나 증가했다.

봄, 서점가에 '식물 책'이 늘고 있다. 원예나 가드닝 등 취미 실용서를 넘어 다양한 학문점 관점에서 식물을 깊이 있게 다루는 교양서로 진화한 게 특징이다.

‘자연 에세이’ 분류를 따로 집계하고 있는 인터넷서점 알라딘 통계(2018년 35종, 2019년 53종, 2020년 46종)에서도 초록빛 유행은 확인된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과장은 “코로나 영향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사람들이 반려식물을 많이 키우면서 식물 책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나온 식물 책들은 식물을 어떻게 죽이지 않고 잘 키울지에 집중됐던 가드닝과 원예 중심의 취미 실용서와는 분명 결이 다르다. 자연과학, 인문, 사회, 심리, 생태·환경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식물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교양 영역으로 한 단계 진화한 모양새다.

“삶의 태도까지 달라졌다” 힐링 너머 멘토로

백리향과 닮았으나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한국 고유종인 섬백리향. 세상에 혼자라고 느낄 때, 울릉도 도동향 절벽 끝에서 긴 시간 홀로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매년 아름다운 연분홍색 꽃을 피워내는 향나무를 떠올려보자. '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 작가. 김영사 제공

식물 에세이의 가장 큰 효용은 힐링이다. 양혜영 윌북 편집자는 “작은 공간에서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자연의 시간에 맞춰 몸과 손을 써가며 몰입해 식물을 키우다 보면 맑은 정신과 함께 최소한의 치유를 얻게 되지 않느냐”며 “식물이 주는 정직한 위로와 응원에 삶의 태도까지 달라졌다는 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식물과 정원 가꾸기의 심리학적 가치를 분석한 ‘정원의 쓸모’는 ‘식물집사’들의 호응에 힘입어 출간 두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인생 멘토’로 활약하기도 한다. ‘전략가, 잡초’를 펴낸 정은미 더숲 편집부 과장은 “흔히 잡초를 보잘것없는 식물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론 특수한 ‘엘리트’ 식물이다. 태어날 때는 가장 연약한 식물이었지만, 다양한 생존전략을 구사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획득하는 여정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하더라”고 말했다.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식물의 찬란한 생애에서 인생의 지혜와 가르침을 얻는다는 것.

미술관에서 볼 법한 수준 높은 세밀화 '작품'

코 끝에 향기가 느껴질 만큼 생생하게 그려진 식물 세밀화(보태니컬 아트)도 식물 책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다. 식물을 구성하는 뿌리, 잎, 꽃 등을 실제처럼 구현해내는 일종의 식물도감인 세밀화를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식물 책을 사본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런 팬들에게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인 신혜우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식물학자의 노트’는 두 손 들고 반길 책이다.

붉은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가시복분자 열매. '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 작가. 김영사 제공

신 작가는 영국왕립원예협회 국제전시회에서 식물 일러스트로 금메달을 휩쓸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도 진행한 실력자.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로 식별 가능한 여린 잔뿌리, 솜털, 가느다란 이파리까지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년. 문헌 조사, 표본 확보, 한해살이 관찰은 기본이다. 신 작가는 꽃이 피는 과정을 놓치면 다음 해까지 다시 기다렸다 그릴 만큼 공을 들였다.

밤에 피고 낮에 지는 달맞이꽃과 달리, 분홍낮달맞이꽃은 낮에 꽃을 피운다. 분홍색 꽃잎 특유의 사랑스러움 덕분인지 '아름답고 우아하다'(speciosa)란 학명을 지녔다. '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 작가. 김영사 제공

식물의 가장 큰 매력을 “너그러움”이라고 꼽은 신 작가에게 식물과 어떻게 하면 친하게 잘 지낼 수 있을지 물었다.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식물의 마음을 가져보는 거예요! 이름 모를 작은 풀꽃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인간이 갖지 못한 무한한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식물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내 마음까지 어루만지게 되는 매력, 봄날 식물 책이 안겨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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