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막한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리뷰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이국적인 인도풍 배경이 코로나19로 가슴 답답했던 관객들에게 위안을 전했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27일부터 공연 중인 '라 바야데르'는 우선 시각적으로 흥미롭다. 주인공들의 치정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1~2막에서는 하얀색 튀튀로 상징되는 고전 발레의 우아함을 잠깐 뒤로하고, 형형색색의 춤이 쉴새 없이 등장한다. 주역 니키아를 비롯해 벨리댄스 의상을 연상하게 만드는 발레리나들의 옷은 역동적인 춤사위와 잘 어울렸다. '라 바야데르'는 중간 휴식시간을 비롯해 160분의 긴 공연시간을 자랑하지만, 200여벌에 달하는 다채로운 의상과 무대, 소품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화려한 볼거리 이상으로 극을 살린 주역은 음악이었다. 무용과 음악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파드되(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를 췄다. 지난 3월 국립발레단의 '해적' 공연에서 연주했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제임스 터글이 이번에도 함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음악감독 출신의 터글은 과연 발레 음악의 명지휘자답게 무용과 혼연일체 되는 음악을 보여줬다. 지휘자의 손끝에서 악센트가 표현됐던 순간마다 정확히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의 격정이 표출되곤 했다. 터글이 해석한 템포와 셈여림은 작품 몰입감을 배가한 핵심 도구였다.
극 주인공인 무희 니키아는 자신의 연인 솔로르가 권력에 눈이 멀어 감자티 공주와 약혼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비운의 인물이다. 이들의 약혼식에서 추는 니키아의 독무는 극의 서정성이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다. 이때 니키아의 심정을 따라 음악은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춤이 시작되면서 B 단조의 구슬픈 첼로 선율이 맴돌 때는 니키아의 비애가 묻어 있다. 그러다 솔로르가 보낸 줄로 착각한 꽃다발을 받는 순간 B 장조의 흥겨운 음악이 전개됐다. 니키아의 춤도 환희에 가득찼다. 하지만 꽃다발 속에는 독사가 들어있었다. 니키아를 죽이려는 계략이었던 것. 독사에 물린 니키아는 다시 절망 속으로 추락하고, 음악도 단조로 바뀐다. 2막의 막바지는 인물의 심경에 따라 조바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3막에서도 음악의 힘이 도드라졌다. 니키아가 죽은 뒤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 솔로르는 슬픔을 잊기 위해 망령의 세계로 떠난다. 이 때 솔로르를 초현실로 인도하는 주체는 하프다. 하프의 솔로 연주는 그 자체로 몽환적이어서 현실과 꿈을 구분지었다.
2막까지 알록달록한 색채감을 보여줬던 '라 바야데르'는 3막에 오면서 다시 클래식 발레로 옷을 갈아입었다. 세상 너머에서 32명의 망령들이 새하얀 의상을 입고 한명씩 등장하는 장면은 '발레 블랑(백색 발레)'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들은 특정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는 '아라베스크' 춤을 추며 등장하는데, 무려 46차례나 계속된다. '아라베스크'는 이슬람 양식에서 발견되는 반복적인 무늬를 말한다. 이때도 오케스트라는 8마디씩 도돌이표 연주를 반복하며 패턴 음악을 들려줬다. 무용과 음악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5년 만에 국내 관객을 다시 만난 '라 바야데르'는 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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