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체에서 콘텐츠 업체로 간판 바꿔 단 소니
1946년 창업 이후 처음 순이익 10조원 돌파
히라이 가즈오 전 회장의 과감한 사업재편 덕분
1990년대 일본은 세계 전자업계의 절대강자였다. 특히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은 글로벌 히트상품이었고, 소니 브라운관 TV는 30년간 세계 안방을 점령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소니 제국도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면서 2000년대 중반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 언론조차 "전설의 소니는 이제 없다.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이란 혹평을 쏟아냈다.
그랬던 소니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주력 사업이라도 성장성이 떨어지면 과감하게 구조조정하고, 미래 먹거리에 집중 투자를 단행한 결과다. 삼성전자 등 우리 전자업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상 최대 순이익… 게임·영화 등 엔터사업 덕분
2일 업계에 따르면, 소니그룹은 최근 발표한 2020회계연도(작년 4월~올해 3월) 순이익(연결기준)이 전년의 2배 수준인 1조1,717억 엔(약 11조9,500억 원)에 달했다. 매출액도 9% 늘어난 8조9,993억 엔(약 91조8,000억 원)으로, 순이익과 매출액 모두 사상 최대치다. 소니의 연간 순이익이 10조 원을 넘어선 건 1946년 창업 이후 처음이다.
소니의 호실적은 게임과 음악, 영화 등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견인했다. 지난해 지난해 엔터 사업 매출은 전년보다 13% 증가한 4조3,549억 엔(약 44조4,100억 원)에 달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책임졌다.
특히 게임 매출은 전년 대비 34% 증가한 2조6,563억 엔(약 27조9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PS5)'가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며 지난달 말까지 누적 판매량 780만 대를 돌파했다.
'소니 쇼크' 극복 위해 TV, PC 버리고 신사업 집중
소니의 극적인 부활을 주도한 인물로는 2012~2018년 재임했던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전 회장이 꼽힌다. 워크맨과 TV로 1990년대까지 세계를 호령했던 소니는 2000년대부터 인터넷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침몰의 길로 들어섰다. 2003년엔 회사 순이익이 전년보다 40% 추락하는 이른바 '소니 쇼크'도 겪었다.
1984년 소니 뮤직의 전신이었던 CBS에 입사해 51세 나이로 위기에 빠진 소니를 이끌게 된 가즈오 전 회장은 취임 후 화학, TV, 컴퓨터(PC), 배터리 사업을 차례로 정리했다. 특히 소니 제국의 대표 상품 TV 포기에는 내외부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사업은 없다"며 사업 재편을 강행했다.
대신 새 먹거리가 될 게임, 음악, 영화, 금융 등 서비스 산업과 이미지센서 등 부품 산업을 집중 육성했다. 서비스 산업은 수익성이 높을 뿐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의 확장성도 컸다. 가령 소니에서 제작한 영화 콘텐츠는 영화 음악, 게임 등 자사의 플랫폼으로 확장하면서 더 많은 이용자를 모을 수 있었다.
소니의 대표 사업이었던 카메라는 이미지센서 반도체로 계승했다. 이미지센서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자율주행 차량용 센서까지 확장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 분야에서 소니의 시장점유율은 약 50%에 달할 만큼 막강하다. 소니는 또 최근 1,000억 엔(약 1조 원)을 투입해 14년 만에 반도체 공장 신설 계획까지 밝히면서 옛 영광 찾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 업체도 반면교사 삼아야"
소니의 변신은 국내 전자업체에도 교훈으로 다가온다. 삼성, LG 등 국내 업체들은 과감한 투자와 저렴한 노동력으로 2000년대 들어 일본 기업을 제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강력한 정부 지원 아래 급성장하는 중국업체에 역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미 액정화면(LCD) 사업은 중국 BOE에 1위 자리를 내줬고 스마트폰도 샤오미, 오포, 비보에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정부 지원과 막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빠르게 제조 경쟁력을 키워가는 만큼 우리 기업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며 "최고경영진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아래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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