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이는 혐오 표현" 지나친 불편함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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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는 혐오 표현" 지나친 불편함일까요

입력
2021.05.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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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미숙하게 여기는 편견 조장" 주장에
공공 기관의 'ㅇ린이날' 캠페인 서둘러 끝나
그러자 "지나친 불편함"이라는 반론도 나와
전문가 "의도 상관없이 차별 조장하면 혐오 표현"
"어린이를 낮춰보는 경향 없는지 돌아봐야"

서울 시민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됐던 서울문화재단의 어린이날 맞이 온라인 캠페인 안내글. 현재는 삭제됐다. 트위터 캡처

주린이(주식+어린이), 코린이(비트코인+어린이), 부린이(부동산+어린이), 요린이(요리+어린이), 헬린이(헬스+어린이)...

어떤 단어에 '~린이'를 붙여 '초보'의 뜻을 나타내는 신조어들, 요즘 많이 접해 보셨죠?

그런데 최근 "'~린이'는 어린이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며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대: "어린이는 미숙하다는 편견 키워"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라는 편견을 조장한다"며 '~린이' 사용에 반대하는 주장들. 트위터 캡처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이 23일 '○린이 날·☆린이 날·△린이 날' 온라인 캠페인을 열었던 게 발단이 됐습니다.

해당 캠페인은 '첫 도전을 시작하는 우리는 모두 어린이'라며 나이와 상관없이 첫 도전과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인증 사진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지급하는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린이'는 어린이가 무조건 무언가에 익숙하지 않고 미숙하다는 편견을 조장하는 말인데,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편견을 확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빗발쳤습니다. 재단은 결국 이벤트를 예정보다 일찍 끝냈고, 해당 게시글도 지웠습니다.

찬성: "지나친 불편함" "오히려 귀여운 표현인데"

"'~린이'는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온라인 게시글과 댓글. 커뮤니티 게시판 캡처

이 소식이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자 이번엔 반대로 "지나친 불편함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한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는 "요즘 누가 어린이를 불완전하고 미완전한 존재로 보나. 어린이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존재고 무한한 발전이 가능한 존재로 봐야 하는데 본인들이 그렇게 보니까 불편해 보이는 거지"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전자기기 구매 정보 커뮤니티의 사용자는 "소수의 불편자가 다수를 불편하게 만드는 세상"이라며 '~린이'가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같은 커뮤니티의 또 다른 사용자는 "~린이 사용 용례는 귀여운 편 아닌가"라며 "본인이 초보일 때 접미사처럼 붙여서 쓰는 것이지 다수가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린이' 사용 찬반 묻는 설문까지 나와

교보문고는 최근 "67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오프라인 조사에서 31%가 '~린이' 사용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유튜브 채널 캡처

최근 '~린이' 사용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설문 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요,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팽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3일 교보문고 유튜브 채널에서 그 결과가 소개됐는데요. 교보문고가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674명)의 31%는 '~린이' 사용을 부정적으로 보는 반면, 26.2%는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정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 "어른의 미숙함을 희화화하는 것 같다"는 반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 "초보를 좋게 봐주는 것 같다", "입문자를 성장 시기에 빗대 표현한 게 신선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대다수(42.8%)는 '~린이'의 사용을 가치중립적으로 봤다고 합니다. 단지 "새로운 신조어구나"라고 생각하거나,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사용해서 별로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는 답변이었죠.

'로린이(로리타+어린이)'에서 시작했다는 주장도

지난해 한글날을 하루 앞둔 10월 8일 국제아동인권센터는 '~린이'가 어린이 비하 표현일 수 있다며 대신 '~초보'를 쓰자는 제안을 던졌습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페이스북 계정 캡처

사실 '~린이' 표현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국제아동인권센터도 한글날을 앞둔 10월 8일 발행한 카드뉴스에서 "아동인권적 시각에서 볼 때 '~린이'에는 '어린이는 미숙하다', '불완전한 존재다'라는 생각이 반영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이의 사전적 의미가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춰 이르는 말'임을 되새기며, '요리 초보', '부동산 초보' 등으로 바꿔 사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린이'가 어린이를 성착취 대상으로 바라보는 '로린이(성적 매력이 있는 성숙한 소녀를 의미하는 로리타와 어린이의 합성어)'를 계기로 확산했다며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로린이는 2013년 자신이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이 초등학생 사진과 함께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며 처음 알려졌는데요. 이 일베 회원이 실제 초등학교 임용 대기자이고, 이듬해 다른 지역 초등학교로 발령된 사실이 밝혀지며 파장이 컸습니다.

"혐오 표현은 편견·차별을 가져오는지가 기준"

혐오 표현을 연구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말의 의도나 어원보다, 그 말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지가 혐오 표현의 기준이다"라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전문가들 중에서도 '~린이' 사용은 혐오 표현이라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혐오 표현을 연구하고 있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혐오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효과가 있는지 여부"라고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발화자의 의도나 어원보다는 '이 표현이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라는 겁니다.

홍 교수는 "'~린이'를 비하하는 의도를 갖고 쓰는 경우는 없겠지만, 어린이가 마치 모든 문제에 있어서 미숙하고 초보자라는 인식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린이도 엄연한 인격적 주체로서 그 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편견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린이'에서 어린이를 낮잡아 보는 무의식적 경향성을 읽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차별 언어를 연구하고 있는 이정복 한국사회언어학회 회장(대구대 교수)은 "어린이는 언제나 부족하고 미성숙한 존재라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비하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런 표현들이 지속적으로 쓰이면 고정관념이 강화돼 어린이에 대한 존중 의식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어린이' 단어 탄생 100주년 앞두고 퇴행하는 느낌"

1922년 발표된 어린이날 선언문. 이때 '어린이'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방정환재단 홈페이지 캡처

어린이라는 존재를 탐구해 온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어린이'라는 말의 유래, 역사적 맥락에 주목하며 '~린이'의 사용에 우려를 표합니다.

그는 "최근 10년 전부터 '초딩같이 왜 이래' 또는 '급식충' 등의 말이 만들어지더니 어린이를 걸림돌이 되거나 통제 불가능하고 문제가 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린이'도 마찬가지"라며 "'주린이라 잘 몰라요', '부린이가 와서 설치네'와 같은 용례를 보면 어린이를 무시하는 맥락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른이 자신을 귀엽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린이'를 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속에 이미 어린이는 귀여운 존재, 무해한 존재여야 한다는 선입견이 내포돼 있다"며 "한 집단으로 묶어서 '미숙한 존재', '귀여운 존재'로 지칭(대상화)하는 것은 폭력 아닌가"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동·청소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너희를 존중하고 있다'고 어린이들에게 꾸준히 신호를 보낸다"면서 "하지만 디지털이나 레거시 미디어에서 '~린이'를 활발히 쓰다 보니 정작 어린이들은 어린이를 낮춰보는 문화부터 습득을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김지은 평론가는 "언어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그러나 다수가 쓰고 있다고 해서 타당성까지 입증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마침 내년이면 '어린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지 100년이 된다"며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연령주의'로 퇴행하는 느낌"이라며 3세든, 5세든, 70세든 모두 동등하게 대하자는 단어의 취지를 되새겨 보기를 당부했습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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